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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14. 이백문서(晉, 李柏)

by 혜당이민지 2010. 5. 1.

 

14. 李柏文書(晉, 李柏)


<이백문서(李柏文書)>는 이백(李柏)이 진나라 함화(咸和) 3년(328)에 쓴 것으로 지본(紙本) 묵적이다.  1908-1909년 일본의 서본원사(西本院寺) 탐험대가 누란(樓蘭)에서 발굴했다.  현재 일본 경도 용곡(龍谷)대학도서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이는 모두 행서로 3건이다.  하나는 잔지(殘紙)로 초고(初稿)라고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9행으로 용묵은 풍요롭고 윤택하며 이고(二稿)이다.  또 다른 하나는 12행으로 먹색은 마르고 전부 붓끝으로 쓴 것으로 삼고(三稿)이다.

주의할 점은 이백과 왕희지가 동시대 사람이고 이 세 건의 문서는 <난정서>보다 25년 빠르다.  따라서 이는 동진초기의 행서와 용필법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문서는 비록 같은 날에 썼지만 쓴 사람의 심리상태와 생각이 다름으로 인해 나타난 의취도 조금 다르다.  초고와 이고를 보면 서풍은 대체로 같고 용묵은 모두 포만하다.  문장에 임해 붓을 잡고 한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태가 평화롭고 풍신이 침착하고 조용하다.  종횡의 필치는 기본적으로 뾰족한 필봉으로 순차적으로 종이에 썼기 때문에 기필은 뾰족하면서 둥글고, 중간은 조금 풍요로우며, 수필은 둥글고 윤택하다.  예를 들면 세 번째 행의 ‘恒不去心, 今奉臺使來西.’가 그러하다.  날획은 대부분 점법(點法) 혹은 절법(折法)을 운용했다.  전자는 ‘史, 今, 奉, 大’ 등이 그러하고, 후자는 ‘廻, 足, 遣, 通’ 등이 그러하다.  心자는 대부분 점법을 운용했으니 예를 들면, ‘心, 息, 意’가 그러하나 두 번째 필획이 비교적 길고 위로 삐치는 형세가 있으니 이는 아직 예서 필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절은 비록 방필과 원필을 겸비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한간(漢簡)의 절법과 일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서풍은 왕희지 초기의 글씨인 <이모첩(姨母帖)>과 비교적 가깝고 모두가 예서와 행서 사이에 낀 서체 형식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삼고와 이고의 서풍은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용필이 크게 다를 뿐 아니라 결체도 서로 같지 않으니 그 원인은 주로 두 방면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이 세 건의 문서는 구법(句法)이 모두 같고 문자도 많지 않기 때문에 몇 차례 원고를 고친 뒤에는 글의 내용과 구법이 이미 마음속에 익숙해진다.  그러므로 일단 붓을 대면 거의 생각하지 않고 빨리 쓰더라도 필세와 서세가 이에 따라 변화를 나타내니 이른바 ‘한일신비(翰逸神飛)’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삼고를 쓸 때 먹이 이미 많지 않고 그도 다시 갈아 쓸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남은 먹물을 한 번 묻혀 단숨에 썼기 때문에 종이 가득히 비백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뜻하지 않게 작품에서 신채가 일어나고 고졸하면서 노숙한 면을 나타내기 때문에 안진경의 <제질문고(祭姪文稿)>과 유사한 묘함이 있다. 

이는 같은 조건을 가진 상황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예가 익숙한 경지에 이르러 심수쌍창(心手雙暢)의 경지에 도달한 다음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잠재된 의식을 발휘해야 비로소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용필 기능은 매우 풍부하지 않지만 그는 철저히 중봉의 원칙을 준수하여 필획마다 중봉으로 종이에 압력을 넣고 중간이 가장 깊게 들어갔기 때문에 글씨가 가볍고 매끄럽지 않다.  이렇기 때문에 설령 운필은 매우 마르지만 필획 중심선에 먹물이 매우 깊고 양 가장자리는 허하니 이는 서예에서 가장 얻기 힘든 필법으로 의미도 매우 깊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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