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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12. 천발신참비(吳)

by 혜당이민지 2010. 5. 1.

 

12. 天發神懺碑(吳)


<천발신참비(天發神懺碑)>는 또한 <오천새기공송(吳天璽紀功頌)>이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오나라 천새원년(天璽元年, 267)에 새겼다.  오나라 마지막 군주인 손호(孫皓)가 하늘에서 부서(符瑞)를 내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워 그 공로를 기록했다.  이 비는 원래 강소성 강령(江寧)의 천희사(天禧寺)에 있었는데, 뒤에 주사정(籌思亭)으로 옮겼다가 다시 존경각(尊經閣) 현학(縣學)으로 옮겼다.  이 돌은 둥근 휘장과 같은 형태로 둘레를 돌아가며 문자를 새겼으며, 글씨는 황상(皇象)이 썼다고 전하나 근거는 없다.  송나라 때 원석이 세 단락으로 쪼개졌다.  상단은 21행이고, 중단은 17행이고, 하단은 10행으로 무도 213자이기 때문에 또한 <삼단비(三段碑)>, <삼격비(三擊碑)>라 불린다.  뒤에는 송나라의 호종사(胡宗師), 석예형(石豫亨) 및 명나라의 경정향(耿定向)의 제발 3칙이 있다.  이 비는 청나라 가경(嘉慶) 18년(1813) 8월 불에 훼손됐다.

이 비의 서법은 전서 같기도 하고 예서 같기도 하여 서예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독특하다.  방삭(方朔)은 <침경당금석서화제발(枕經堂金石書畵題跋)>에서 “내가 그 글씨를 보니 모나게 꺾어 예서 필치로 서리고 전서체로 나갔다.  긴 창과 날카로운 검 가운데 실로 마른 활과 부드러운 손이 있으니, 장회관이 침착통쾌라는 말로 이를 지목한 것이 진실로 허된 것이 아니다(予觀其書, 方折盤旋以隸筆而行篆體, 戈長劍利中實乃弓燥手柔, 張懷瓘二沈着痛快目之, 良不虛也).”라고 했다.  마종곽(馬宗藿)은 《서림조감(書林藻鑑)》에서 “진예의 방필로 주나라 금문의 둥근 것을 섞어 형세는 험절하나 국면은 관박하고 필봉은 곧으나 운치는 두터우며 빠졌다가 다시 나오려고 하고 답답한 것 같으면서도 다시 폈다.  이러한 것은 동한의 여러 비들이 오히려 그 진기하고 위대함에 한 수 뒤진다.  즉 이에 치우쳐 배우면 윗나라를 유린한다.  단지 벽과 성채가 너무 험준한 것으로 오르는 자를 물리친다.  그러므로 이를 잇는 자가 적을 따름이다(以秦隸之方, 參周籒之圓, 勢險而局寬, 鋒廉而韻厚, 將陷復出, 若鬱還伸. 此則東都諸石, 猶當遜其瑰偉. 則此偏師, 是以陵轢上國. 徒以壁壘太峻, 攀者却步. 故嗣音少耳).”라고 했다.  용필 또는 서풍이 어찌되었든 간에 이 비는 확실히 서예사에서 둘도 없이 독특하다.  서체는 틀림없이 전서에 속하지만 이것의 용필은 오히려 전법(篆法)이 아니고 또한 예법(隸法)과도 다르다.  가로획은 세로획에서 일으키는 법을 사용했고, 세로획은 가로획에서 일으키는 법을 사용했다.  즉 가로획은 모나게 일으켜 모나게 거두었다.  만일 가로획을 주로 할 때는 기필에서 먼저 별기법(撇起法)을 사용한 뒤에 붓을 일으켜 붓을 펴는 곳에 이르러서는 아래로 누른 뒤에 오른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세로획은 현침법(懸針法)을 많이 사용했다.  좌우의 두 세로획은 둥글고 방종한 필치로 나가다가 붓을 거둘 때는 모두 현침(懸針)처럼 했다.  그러므로 장정제(張廷濟)는 이를 “옛날 칼을 끊는 것 같고, 옛날 비녀를 자르는 것 같다(如切古刀, 如斷古釵).”라고 하여 봉망이 예리하고 기세가 험준함을 비유했다.  전절은 모두 방절법(方折法)을 사용했으나, 이는 예서와는 다르게 별도로 한 필획을 일으켜 세로획으로 가로획에 접해 완성했다.  행필은 때때로 먼저 붓을 눌러 꺾은 다음 조금씩 가볍게 들다가, 중간 못미치는 곳에 이르러서는 점차로 누르며 간 뒤에 봉망을 방종하게 나가게 하는 것은 해서의 별법(撇法)과 유사하나 단지 곡직(曲直)이 서로 다를 뿐이다.  형세를 취함에 있어서는 이미 전서의 향법(向法)을 사용하면서 또한 예서의 배법(背法)을 섞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오히려 매우 협조를 이루고 있으니 이는 이를 쓴 사람의 뛰어난 재능이다.  결체는 방정하여 이미 예서의 관박하고 기위(奇偉)한 기가 있고, 또한 전서의 위아래로 날아오르는 운치도 있다.  험준하고 예리하면서 굳센 것이 매우 담력이 있다.  비록 괴상하고 기이하나 이것으로 모든 범부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익숙한 뒤에는 용필의 방식과 결구가 비록 면목이 뚜렷하지만 대부분 단조롭고 매우 규범적인 경향이 있어 일단 진입하면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장정제가 “양한 이래 유일한 것으로 이러한 것이 둘이 있다면 아름다울 수 없다.”라고 한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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