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十七帖(晋, 王羲之)
<십칠첩(十七帖)>은 당 태종인 이세민이 왕희지의 글씨를 사들여 대략 1丈 2尺으로 1권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첩의 첫머리에 ‘十七’이라는 두 글자가 있어 <십칠첩>이라 이름했다. 전체는 모두 초서 38첩인 134행으로 전해지는 왕희지의 초서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이는 서풍이 가장 완전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평소 ‘逸少書中龍’이라 불렸다. 세상에 전해지는 각본으로는 두 계통이 있으니, 하나는 첩 끝에 ‘勅’자가 있는 것이니 이는 당나라 홍문관의 신하인 해원외(解元畏)가 늑석(勒石)하고 저수량이 교정한 것으로 이를 간단히 줄여 ‘관본(館本)’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하지장(賀知章)의 임본이라 전하는 것으로 《징청당첩(澄淸堂帖)》과 《순화각법첩(淳化刻法帖)》에 각각 새겨져 있다. 이것들을 서로 비교하면 ‘관본’이 가장 고졸하고 진짜에 가깝다. 이 작품은 역대로 초서의 걸작이라 여겼다.
왕희지의 초서에 대해 역대로 의견이 분분했다. 장회관은 《서의(書議)》에서 “왕희지의 초서는 여자의 재주가 잇고 장부의 기개가 없어 귀하지 않다.”라고 했는데, 지금 이 첩을 보면 장회관의 평은 믿을 수 없다. 장회관이 왕헌지의 대초(大草)를 찬양하고, 왕희지의 소초(小草)를 폄하한 것은 순전히 개인의 기호에서 나온 것이다. 주희(朱熹)가 “<십칠첩>의 필의를 감상하면 기상이 초연하여 법도의 구속을 받지 않고 법도의 벗어남을 추구하지 않았으니 정말 이른바 하나 하나가 자기의 흉금으로부터 흘러 나왔다고 하겠다. 내 생각에 서예가들은 비록 그 아름다움을 아나 그것이 어째서 아름다운지는 반드시 알지 못한다고 하겠다.”라고 평한 것이 매우 일리가 잇다.
<십칠첩>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서 필법을 초서에 도입했으며, 격이 높고 운치가 표일하다.
일반적으로 말해 해서는 그 운치를 얻기 어렵고, 초서는 그 바름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이 첩에서는 곳곳에 해서 필법을 보여주면 하나의 필획이라도 소홀하게 한 것이 없다. 용필은 웅건하고 풍요로우며, 왼쪽은 내엽법(內擫法)을 사용했고, 오른쪽은 외탁법(外拓法)을 하여 문질이 어울리고 기상이 혼박(渾朴)하다. 비록 초서이나 견사(牽絲)를 띤 필획이 우연히 나와 끊어진 것 같으나 연속되고 체세가 날아 움직이는 것 같다. 제안돈좌(提按頓挫)는 온전히 공중에서 나왔고, 사전(使轉) 및 점과 획은 모두 뜻대로 되어 필획이 들어가고 나오는 사이에 스스로 법도를 이루었고, 필묵은 간결하고 풍요로우며 운치는 천고에 높았다. 이는 초서에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경지로 장정몽(張正蒙)은 첩의 발문에서 “필법이 예스럽고 질박하여 전주(篆籒)의 남긴 뜻이 있어 근대 사람이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첩을 펼쳐들면 질박하고 두터우면서도 원활한 기운이 종이와 먹에서 넘쳐난다.”라고 했다. 왕희지의 글씨를 배우는 사람은 대부분 그의 연미함을 중히 여기나 질박한 곳에서 그 정신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손과정의 <서보>와 이 첩을 비교하면 고금의 차이를 가슴에서 느낄 수 있다.
둘째, 필치는 우연히 형태를 이루며 자연의 공력에 통한다.
임기응변에서 변화가 나타나 종이 위에서 뜻과 합한다. 이 첩은 모두 38개의 서찰로 왕희지가 서로 다른 시기에 썼으나 필치와 서풍은 모두 임기응변에서 변화를 나타내고 기상이 각각 달라 하나의 서찰마다 나름대로의 경지가 있다. 예를 들면 <천서첨(天鼠帖)>은 고졸하고, <유목첩(遊目帖)>은 유미(流媚)하고, <십칠일첩<十七日帖)>은 간략하고, <촉중첩(蜀中帖)>은 방일(放逸)하다. 또한 글자마다 달라 자연스러움이 뛰어나다. 크고 작은 글자에 따라 형태가 서고, 형세에 따라 사전을 하면서 성글고 긴밀하며, 기운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바르고, 둥글고 유창한 가운데 예스럽고 질박한 기운을 얻었다. 매우 주목할 것은 첩 뒤에 있는 2줄의 해서로 이는 세상에 전해지는 것 중에서 왕희지의 해서 필법에 가장 가까우며, 대소가 착락을 이루며 매우 예스럽고 질박하다.
셋째, 장법은 산뜻하고 간결하면서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기는 매우 엄밀하게 관통되어 있고, 윗글자의 끝획과 아랫글자의 기필은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다. 그러므로 형식상으로는 이어진 필획이 매우 적지만 기세는 하나로 꿰뚫고 있어 기맥을 연결하니 이는 왕희지 글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글씨는 더욱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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