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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자료실/서론자료

[스크랩] 설문해자서 (허신) 1

by 혜당이민지 2010. 2. 19.

 

 

설문해자서(說文解字序)

 


허신(許愼) 
 

古者庖羲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視鳥獸之文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始作易八卦, 以垂憲象. 及神農氏結繩爲治而統其事, 庶業其繁, 飾僞萌生. 黃帝之史倉頡, 見鳥獸蹄迒之迹,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 百工以乂, 萬品以察, 蓋取諸夬, 夬揚于王庭, 言文者宣敎明化於王者朝廷, 君子所以施祿及下, 居德則忌也. 倉頡之初作書, 蓋依類象形, 故謂之. 其後形聲相益, 卽謂之. 文者, 物象之本, 字者, 言孶乳而浸多也, 著於竹帛謂之, 書者如也. 以迄五帝三王之世, 改易殊體. 封于泰山者七十有二代, 靡有同焉.

 

옛날 포희(一作 庖牺ㆍ伏羲)씨가 천하의 왕이 되었을 때, 우러러 하늘의 형상을 보고 굽어 땅의 법을 보며 새와 짐승의 문양과 땅의 마땅함을 보아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비로소 『주역』의 팔괘를 만들어 법의 형상을 드리웠다. 신농씨에 이르러 결승으로 다스리고 그 일을 거느림에 여러 일들이 번거로워져 꾸밈이 많아졌다. 황제의 사관 창힐은 새와 짐승의 발자국 자취를 보고 이치를 분별하여 서로가 다름을 알아 처음으로 서결을 만들었다. 백관의 다스림과 만물의 살핌은 대개 쾌괘에서 취하였는데,  쾌괘가 조정에서 드날렸다는 것은 문자가 왕의 조정에서 가르침을 베풀어 교화를 밝힌 것이고, 군자가 녹을 베풀음에 아래까지 이른 것이니, 덕을 쌓고 금기의 법칙을 세웠음을 말한다.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듦에 대개 유형에 의하여 형태를 그렸으므로 ‘문(文)’이라 일컫는다. 이후 형태와 소리가 서로 더하였으니, 즉 ‘자(字)’라 일컫는다. ‘문’이란 것은 사물 형상의 본래이고, ‘자’라는 것은 불어나서 점차로 많아진 것을 말한다. 죽백에 기록한 것을 ‘서(書)’라 하니, ‘서’라는 것은 같은 것이다. 오제와 삼왕의 시대에 이르러 고치고 바꾸어 형체를 달리했다. 태산에서 봉선한 자는 72대가 있었으나 같음이 있지 않았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심제 김보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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