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禮器碑(漢)
<예기비>는 한비(漢碑)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으며, 대부분의 학자들도 이 비를 한비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고 있다. 아울러 저수량의 글씨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기비>의 전체 명칭은 <한노상한칙조공묘예기비(漢魯相韓勅造孔廟禮器碑)>이며, 또한 <한칙비(韓勅碑)>, <수공자묘기비(修孔子廟器碑)>, <한명부수공묘비(韓明府修孔廟碑)>라고도 한다. 이 비는 <을영비>, <사신비>와 더불어 ‘공뵤지비(孔廟之碑)’라 불린다. 한나라 환제 영수(永壽) 2년(156)에 새겼으며, 비양(碑陽)은 16행에 행마다 36자씩이고, 비음(碑陰)은 3열에 열마다 17행이고, 좌측은 3열에 열마다 4행이고, 우측은 4열에 열마다 4행이다. 비의 글씨는 아직 완전하고 현재 산동성 곡부의 공묘에 있으며, 세상에 전해지는 가장 빠른 탁본은 명탁이다.
이 비는 역대로 한예의 법도로 여겼으며 정묘하고 준일(峻逸)하다. 그 필법은 대부분 청동기의 특색을 계승하여 강철 같은 근골이 있어 역대 서예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곽종창(郭宗昌)은 《금석사(金石史)》에서 “그 자획의 좋은 것만 붓과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고아함에 앞이 없으니 신의 도움을 얻은 것이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른바 ‘별이 흐르고 번개가 돌며 섬세하기가 터럭을 심은 것보다 더하다.’라는 것은 아직 만족한 형용이 아니다. 한나라 여러 비들의 결구와 뜻이 모두 비슷하나 유독 이 비만 은하수와 같아 가히 볼 수는 있어도 접할 수는 없다[其字劃之好, 非筆非手, 古雅無前, 若得神助, 弗由人造. 所謂‘星流電轉, 纖逾植發’尙未足形容也. 漢諸碑結構命意皆可髣髴, 獨此碑如河漢, 可望不可接也].”라고 했다.
이 비의 용필은 가장 수경(瘦勁)하고, 종횡의 필획은 뜻이 도각(刀刻)과 같으며, 뾰족한 필봉을 붓에 들여 역입평출을 했다. 행필은 필봉이 골육의 틈새에 들어가는 것 같고, 필봉은 바르고 힘은 강하여 골력도 깊다. 수필(收筆)은 가볍게 들어 되돌아 왔고, 골과 기가 뛰어나고 맑으며, 방필과 원필을 병용하며 변화의 묘는 붓 끝에 있다. 어떤 필획은 비록 가늘기가 터럭 같으나 근골이 구비되었고, 뜻은 금침이 종이에 횡행하는 것 같아 원만하고 윤택한 기가 미묘한 사이에 있다. 파책은 붓털을 더디고 힘이 있게 전개했다. 즉 먼저 붓을 무겁게 누르고 측면으로부터 뛰어오르게 일으켜 필력이 굳세고 험준하여 그 필봉을 가볍게 범할 수 없게 한 뒤에 한 글자의 골력이 전체에서 돋보이도록 했다. 전절(轉折)의 변화는 매우 풍부하다. 혹 ‘龍’자와 같이 붓을 들어 암암리 지나가면서 뜻은 잎사귀를 꺾는 것 같고, 혹 ‘日’자와 같이 붓을 들어 반대로 꺾어 내렸고, 혹 ‘復’자와 같이 필치가 끊어졌으나 공중에서 곧바로 떨어지는 형세를 얻었고, 혹 ‘涒’자와 같이 붓을 들어 위로 향한 뒤에 반대로 꺾어 내렸고, 혹 ‘皇’자와 같이 필봉을 꺾은 뒤에 향하는 형세[向勢]를 만들고, 혹 ‘霜’자와 같이 필봉을 꺾은 뒤에 등지는 형세[背勢]를 만들기도 했다. 이는 마치 왕주(王澍)가 《허주제발(虛舟題跋)》에서 “예서의 필법은 양한 때 극치를 이루어 각 비가 한결같이 기이함을 갖추어 나왔으나 같음이 없는데 이 비가 가장 기이함이 뛰어났다. 파리하고 굳셈은 철과 같고, 변화는 용과 같으며, 한 글자와 하나의 기이함은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隸法雙漢爲極, 每碑備出一奇, 莫有同者, 而此碑最爲奇絶. 瘦勁如鐵, 變化若龍, 一字一奇, 不可端倪].”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비의 결체를 보면 횡세(橫勢)를 위주로 하며 위아래가 정밀하고, 좌우가 성글면서 영활함을 얻었으며, 그 가운데 파책의 필치가 가장 특색이 있다. 결체는 대부분 사다리형을 나타내며 어떤 결체는 매우 바르고 때때로 그 한 모서리를 험준하게 하여 평정한 가운데 기이함을 구했다. 종횡으로 펼치며 침착하고 수려하여 얌전하고 바른 모습을 했다. 특히 비음과 비측은 더욱 소방의측(疏放欹側)하며 수단대소(修短大小)의 변화가 풍부하여 비양의 기식과 조금 다르다. 천성이 진솔하고 용필이 매우 방종하고 표일하며 글자의 형체는 때로는 넓적하고 때로는 길어 정취와 생동감이 물씬거린다. 이에 대하여 왕주는 《허주제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비의 글씨는 다섯 절목이 있고, 형체는 무릇 여덟 번 변했고, 비문은 신중하고 정련되어 온 힘이 이르렀기 때문에 힘이 글자 밖으로 나와 아름다움을 갖추지 않음이 없다. 명문은 신중한 뜻이 조금 선명하여 맑고 세속을 초월하여 거의 붓이 종이에 닿지 않으려 했다. 문 뒤에 9명의 한칙 큰 글씨의 성명자는 마치 해엽과 같으며 유독 신중하고 무겁다. 뒤에 8명은 명문에 비하여 다시는 신중한 뜻이 없으나 맑고 둥글며 묘함이 뛰어나고 손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비음과 문 뒤의 8명은 풍운이 대략 같으나 천기가 떠서 움직여 하나는 바르고 하나는 치우쳐 때때로 무의식중에 나와 곳곳에서 묘함이 나타난다. 양측에 이르러서는 필치가 더욱 방종함이 뛰어났다. 좌측은 시간이 지나 다시 써서 별도의 경지를 열었으며 필치가 비록 매우 방종하나 맑고 둥근 것이 뛰어나 다시 방종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此碑書有五節, 體凡八變, 碑文矜練以全力赴之, 故力出字外, 無美不備. 銘文則矜意稍鮮, 淸超絶塵, 幾欲筆不著紙. 文後九人韓勅大書姓字, 文如薤葉, 獨爲矜重. 後八人比于銘文, 無復矜意, 而淸圓超妙, 動手自然, 碑陰與文後八人, 風韻略似, 而天機浮動, 一正一偏, 往往于無意之中, 觸處生妙. 至兩側而筆益縱絶矣, 左側逾時復作, 別開一境, 筆雖極縱而淸圓超妙, 復縱不逾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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