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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7. 을영비(漢)

by 혜당이민지 2010. 2. 19.

 

7. 乙瑛碑(漢)


<을영비(乙瑛碑)>의 전체 명칭은 <한노상을영치백석졸사비(漢魯相乙瑛置百石卒史碑)>, 또한 <한노상청치백석졸사비(漢魯相請置百石卒史碑)>이다.  한나라 환제 영흥원년(永興元年, 153)에 새겼으며, 내용은 한나라 노상(魯相)인 을영(乙瑛)이 치백석졸사를 공묘에 청하여 제사를 관장하도록 한 일을 적었다.  이 비는 예서로 씌어졌으며 18행에 행마다 140자씩이고 산동성 곡부의 공묘(孔廟)에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탁본은 명초본이다.

이 비는 역대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나라 10대 명비 중의 하나이다.  손승택(孫承澤)은 《경자소하기(庚子銷夏記)》에서 “문장은 이미 《이아》의 간결하고 질박함을 얻었고, 글씨는 고상하고 예스러우며 초탈하고 표일함을 회복했으니, 한나라 석각에서 가장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文旣爾雅簡質, 書復高古超逸, 漢石中之最不易得者].”라고 했다.  방삭(方朔)은 <침경당금석서화제발(枕經堂金石書畫題跋)>에서 “글자마다 방정하고 침착하고 두터워 또한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부유함을 얻었다고 칭찬할 만하다[字字方正沈厚, 亦足以稱宗廟之美, 百官之富].”라고 했다.  왕주(王澍)는 이 비를 ‘웅고(雄古)’하다고 했고, 옹방강(翁方綱)은 “골육이 고르고 정과 문장이 유창하여 한예에서 가장 법이 된다고 함이 빈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비의 서풍을 보면 매우 성숙되어 한나라 팔분예서의 표준을 이루고 있다.  용필은 역입평출(逆入平出)을 하며 방필과 원필을 겸했고, 침착하고 평화로우면서 윤택한 가운데 뾰족한 갈고리의 필획이 있다.  곳곳에 향배와 부앙을 이루며 자태가 아름답고 혼박한 가운데 맑고 수려한 기가 나타난다.  가로획과 파책은 항상 무거운 필법을 운영하여 웅건하고 호방하면서도 풍운(風韻)이 소박하고 무성하다.  제안돈좌(提按頓挫)의 리듬이 명쾌하고, 필력이 온건하고 중후하여 서두르지 않은 풍모가 다른 것보다 뛰어나다.  결구에서 체세는 나뉘어 벌려 서로 등지며 가운데는 수렴되고 곁은 펼쳤다.  힘써 횡세(橫勢)를 취하여 형체는 모나고 넓적하며, 결구는 매우 근엄하다.  그러나 모나고 넓적한 것은 단지 일상적인 격식이고, 여기서 변화를 구하여 종횡으로 자태를 내어 때로는 길게 쓰기도 했으니, 예를 들면 ‘司農’, ‘尹’, ‘尊’ 등이 그러하다.  소밀(疏密), 기정(寄正), 천삽(穿揷), 피양(避讓)의 변화를 강구하여 졸함에 공교함을 깃들게 하면서 점과 획이 호응을 이루고 골육이 고르고 깨끗하도록 했다.  비록 체세가 모나고 넓적하나 그 필력이 웅장하고 기세가 넓어 곳곳에서 일종의 묘당의 위엄을 느낀다.  전체의 포국은 분명하여 사람을 감동시키고 운치가 물씬거린다.  필획의 조세(粗細)와 대소의 묘가 적당하여 둥근 것은 강인하고, 모난 것은 굳세고 날카로우며, 굵어도 살찌거나 속되지 않고, 가늘어도 살짐이 깎이지 않았으며, 기운과 풍격이 높고 귀하며 커다란 기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  신채로 볼 때 소쇄하고 표일하여 사납고 야한 기가 없으며, 단정하고 관박하여 학이 춤추는 자태를 얻었다.  글자가 서있는 형태를 한 것 때문에 마치 꽃잎이 무성하여 고박한 가운데 호화로움이 깃들고, 엄숙하고 그윽한 가운데 풍부한 아름다움을 얻었다.  정신과 모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깊게 음미하며 돌아보는 것이 정말 한비(漢碑)의 걸작임에 부끄럽지 않다.

세상에 전해지는 한비가 매우 많으나 이와 같이 박무령화(朴茂靈和)한 것은 실로 많지 않다.  글씨를 배우는 사람에게 말한다면 한예를 배움에 마땅히 이 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비를 배우게 되면 마르고 파리한 잘못을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속(肥俗)한 습기에도 쉽게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 뒤에 위로는 <석문송>으로 올라가고, 아래로는 <예기비>와 <조전비>를 접하면 한예의 정수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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