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張遷碑(漢)
옛사람이 생각하길 한비의 묘함은 바로 “각 비가 한결같이 기이함을 갖추어 나왔으나 같음이 없다(每碑備出一奇, 莫有同者).”라는 데에 있다. 이른바 당해(唐楷)의 서풍은 거의 모두가 한비에서 그들 각자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석문송>, <예기비>, <조전비>, <장천비>가 가장 전형을 이루고 있다.
<장천비>의 전체 명칭은 <한고곡성장탕음현령장천표(漢故穀城長蕩陰縣令張遷表)>이다. 동한시기 중평(中平) 3년(186)에 새겼으며, 명나라 초에 출토되었다. 16행에 행마다 42자씩 씌어졌고, 비음은 3열인데 위 두열은 19행이다. 산동성 동평현(東平縣)에서 출토되었으며 명탁본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이 비는 지금 태안의 대묘(岱廟) 안에 옮겨졌으며 한비 중에서 가장 기이한 글씨라 불린다.
이 비는 한비에서 가장 고졸방정(古拙方正)하다. 용필은 방필을 위주로 하여 능각(棱角)이 삼엄하여 정으로 철을 자르듯 날카롭고 통쾌하며 심후하다. 사전(使轉)은 방절(方折)과 원전(圓轉)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볼 때 이 비의 용필은 매우 딱딱한 것 같으나 자세히 감상하면 고졸하고 영일(靈逸)한 기가 얼굴에 스친다. 필력의 웅강함과 고고한 풍격은 결코 다른 한비가 필적할 바가 아니다. 특히 비음 부분은 고졸함이 넘치고 신채가 완전하며 소박하고 무성한 기가 필묵에 넘친다. 이러한 도량과 신력(神力)을 두고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하는가 보다. 완숙함이 지극하면 오히려 생삽(生澁)한 필치가 나오게 되는데 이는 서예에서 제일의 경지이다. 곽상선(郭尙先)은 《방견관제발(芳堅館題跋)》에서 “한비에서 엄중하고 평평하며 굳센 것은 비의 으뜸이 된다(漢碑嚴重平硬, 是碑爲冠).”라고 했다. 견실(堅實), 박무(朴茂), 치졸(稚拙), 굴강(倔强)은 이미 이 비의 언어 특징이며 동시에 독특한 풍격의 표현 형식이다. 이 비의 결구를 보면 가로가 평평하고 세로가 곧아 방종하고 표일한 필치가 매우 적다. 서체는 방정하여 기울고 쏠린 것으로 형세를 삼지 않았으며, 안은 성글고 밖은 조밀하여 점잖으면서 관박하다. 대부분의 글자는 상반부를 넓게 펼쳤기 때문에 머리는 크고 다리는 작게 결체 감각을 주면서 일종의 탄실한 체적감(體積感)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 비의 공간 분할은 매우 미묘하다. 때때로 균등하게 배열하지 않고 좌우와 위아래에 조금의 차이를 두어 매우 교묘하게 묘한 정취가 나오도록 했다. 예를 들면 ‘遷’자의 위아래 7개 공간, ‘留’자 아래에 좌우의 2개 공간, ‘君’자의 위아래 4개 공간, ‘自’자 중간의 위아래 3개 공간 등은 모두 고르게 배분하지 않음으로써 평정한 가운데 기이함이 나오도록 했다. 결구의 또 다른 특징은 금석기가 매우 강하고, 한인(漢印)의 특징이 매우 농후하다는 점이다. 각 글자는 모두 마치 한인의 격식을 갖추고 있는 듯 네 글자가 함께 있으며 그 가운데서 미묘한 맛이 더욱 나타나니 이것도 다른 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특징이다. 이 비가 출토되었을 당시 서단 특히 청나라 서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서예가인 하소기(何紹基)는 만년에 한비에서 득력했는데, 특히 이 비를 좋아하여 100번 이상을 임서했다. 이병수(伊秉綏)는 이 비를 배워 청나라에서 예서의 대가로 우뚝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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