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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고전의 향기034 술 친구를 배웅하며

by 혜당이민지 2008. 11. 6.

고전의 향기034        

술 친구를 배웅하며

하늘에서는 별이 되고 땅에서는 샘이 되며, 인간 세상에서는 고을도 되고 나라도 되며, 성인이라는 둥 현인이라는 둥_1) 무궁토록 덕망을 칭송받는 것은 오로지 술밖에 없지요. 나는 평소에 술을 좋아하여 술이 아니면 울툭불툭한 성질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지요.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술을 늘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술 마시는 고상한 분위기를 이해하는 자로는 세상에 나보다 나은 이가 없을 겝니다.

술에 취해서는 기세가 호탕하고 등등하여, 얻는 것이나 잃는 것이나 매한가지로 보았고, 귀한 처지나 비천한 처지나 가리지 않았으며, 오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똑같이 취급하였습니다. 천 길 높이로 날아가는 봉황도 내 눈에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고, 낮은 나뭇가지 끝에 둥지를 튼 뱁새도 내 눈에는 그리 낮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꿈길을 헤맬 때에는 까마득하고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왼손으로는 부구(浮丘)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홍애(洪厓)의 어깨를 치면서_2) 이무기에게 멍에를 지우고 두루미의 등에 걸터앉습니다. 신선들이 모여 사는 열 곳의 선경(仙境)과 삼신산(三神山) 사이를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훨훨 노닐면서 되돌아올 줄을 모르지요.

그런 뒤에 슬픔이 찾아오면 훌쩍훌쩍 울고, 기쁜 마음이 들면 워이워이 노래를 부릅니다.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욕설도 퍼붓기에 남들에게 미친놈이란 소리도 듣고, 소리 높여 노래하고 일어나 춤을 추며 흥에 겨워 즐기기도 하지요.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내가 빠져 여덟 명이 되지 않았고, 술 잘 마시는 신선 여덟에 내가 빠져 아홉이 되지 못했지요_3). 저는 부귀한 공자와 점잖은 처사를 뽕나무벌레인 양 하찮게 봅니다.

그러나 술을 즐기는 사람이 본래부터 시름에 젖고 곤궁한 선비가 많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굴원(屈原)은 유배당한 죄인으로서 “뭇사람이 모두 취해있지만, 나만은 홀로 깨어있다.”고 말했는데, 세상을 풍자하려는 숨은 뜻이 있는 말에 불과하지요. 계수나무 술과 산초 술이 〈구가(九歌)〉에 나타난 것을 보면, 굴원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지요. 그런 까닭에 술을 실컷 마시고 《이소(離騷)》를 읽어야 명사(名士)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요.

공자님은 주량은 한계가 없었으나 주사를 부리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셨다니 진채(陳蔡) 사이에서 곤액을 당한 때에 있었던 일이 아닐까요? 내가 비록 그 정도로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나 바라기로는 공자님을 배우는 것이지요.

1) 모두 술과 관련된 내용이다. 주성(酒星), 주천(酒泉), 주국(酒國), 취향(醉鄕)이 있고, 청주는 성인, 탁주는 현인으로 불렀다.
2) 부구와 홍애는 전설상의 신선으로 곽박(郭璞)의 〈유선시(遊仙詩)〉에 “왼손으로는 부구백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홍애의 어깨를 치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3) 당나라 두보(杜甫)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술을 즐기는 하지장(賀知章)ㆍ여양왕 이진(汝陽王 李璡)ㆍ이적지(李適之)ㆍ최종지(崔宗之)ㆍ소진(蘇晋)ㆍ이백(李白)ㆍ장욱(張旭)ㆍ초수(焦遂)의 행동을 예찬하였다.


◁◀ 유숙(劉淑, 1827~1873)_대쾌도(大快圖)_부분_술판


나는 이겸산(李兼山) 군과 더불어 집에서 빚은 술을 기울일 만큼 친분이 깊은 사이라서 술 먹는 바닥에서 부침을 겪어온 지 여러 해입니다. 기축(己丑)년에는 평양과 의주와 심양과 연경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신묘(辛卯)년에는 내가 연경에서 돌아올 때 변방의 관문에 있는 사씨(史氏)의 주점에서 만나 실컷 술에 취해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뒤의 나날 동안 산속의 정자와 들녘의 공관, 달빛 아래 대지와 꽃 핀 하늘 밑에서 취하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노닐던 그 많은 날은 손가락을 꼽아서는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이제 이겸산이 가난 때문에 집안을 꾸려나갈 방도가 없어서 의주 부윤의 막료로 떠나려 합니다. 나도 궁하게 집에 틀어박혀 있는 처지라 술을 내어 배웅할 처지가 아닙니다. 《시경(詩經)》에서 “술병이 비어 있다니! 술항아리의 수치로다”라고 한 것처럼 정말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의주에는 이름난 술이 많습니다. 바라건대, 나를 대신하여 날마다 술 한 말씩 마시고 이 글을 안주삼아 읽기 바랍니다.

- 이상적(李尙迪), 〈증이겸산서(贈李兼山序)〉, 《은송당집(恩誦堂集)》

해설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글이다. 그는 역관 신분으로 열두 차례나 청나라를 오가며 중국 문사들과 널리 교유한 19세기 중반의 저명한 문인이다. 이 글은 그가 친하게 지낸 술친구 이겸산(李兼山)이 의주 부윤의 막료가 되어 떠날 때 배웅하며 써주었다. 문체는 증서(贈序)이다.

술친구를 보내며 희작의 기미를 약간 넣어 썼다. 술친구가 먼 길을 떠나므로 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다소 들뜬 어조로 술과 음주의 미덕을 먼저 예찬하였다. 자기보다 술 마시는 아취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며 술을 마시고 난 다음의 호기에 찬 기분을 묘사하였다.

그러면서 술이 시름 많고 곤궁한 자들이 즐기는 음식임을 굴원과 공자가 마셨다는 구실을 찾아내어 입증하려 했다. 굴원과 공자도 시름이 생기고 궁하게 될 때에는 술을 마셨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마시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원론적인 내용은 그 이후에 밝힐 사연의 전제이다.

이겸산은 오랜 동안 술을 함께 마신 친구인데 이제 그가 의주로 떠나게 되었다. 술친구가 나를 떠나므로 아쉽기 그지없다. 먼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술을 대접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돈이 없어 술을 사 주지 못한다. 대신에 써 준 글을 안주 대신 삼아 읽어보라고 하였다. 장난기가 들어있는 마지막 대목이 이 글의 정채이면서 여운을 남긴다.

글은 이 시대의 술 마시는 분위기를 잘 드러내 보인다. 당시에는 과음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적지 않게 퍼진 듯하다. 과음이 문사의 사인(死因)인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의 문집에도 저명한 문인인 정수동이 과음하고 갑자기 죽은 것을 애도한 시가 나온다.

필자 : 안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