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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29 병이 나야 쉰다

by 혜당이민지 2008. 9. 29.

고전의 향기  029   (2008. 9. 29. 월)

병이 나야 쉰다

나는 전에 당나라 사람의 시를 보다가 “몸에 병이 들자 그제야 한가롭다¹”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달프게 일하느라 잠깐의 휴식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한가로운 시간을 차지할 수 있는 경우란, 단지 몸에 병이 생기는 그때뿐임을 이 구절은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늘 읊조리면서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데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의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가엾게 여겼다.

나는 올해 춘천부사로 있다가 부름을 받고 황급하게 승정원으로 들어왔다. 날이면 날마다 새벽에 대궐로 들어갔다가 밤이 되어 나왔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다시 가을에서 겨울로 세월은 흘렀다. 그 겨울마저 반이나 지났다. 그동안 잠깐 업무에서 체직된 적이 있지마는 그것도 종기를 앓은 덕분이었다. 그러나 바로 또 분에 넘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최근 들어 감기가 들었다. 그동안 몸이 상한 것이 누적되었기에 생긴 병이어서 내 스스로도 견디기가 어려울 듯하였다. 두 번이나 글을 올려 면직을 애걸하여 허락을 받았다. 오늘부터 비로소 한가한 생활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자(朱子)는 “하루 동안 안정을 취하면 하루의 복이 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따르자면 병이 든 것도 복이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따로 따질 분이 있으리라.

구옹(久翁)이 쓰다. 임진년 동지달 상순.  



◁◀ 윤두서_수하한일도(樹下閑日圖)_선문대학교박물관소장

1) 원문은 ‘身病是閑時’로 장문창(張文昌)의 〈한서자에게 답한다(酬韓庶子)〉는 시의 한 구절이다.

  - 박장원(朴長遠), 〈병한록소서(病閑錄小序)〉, 《구당집(久堂集)》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121집 《구당선생집(久堂先生集)》 14권 서(序)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해설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글이다. 1652년 그의 나이 41세 때 썼다. 그는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의 증조부이며 문장을 잘 짓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1649년에 효종이 등극한 뒤로 조정의 분당(分黨)을 보고 외직을 구해 춘천부사(春川府使)가 되었다. 3년 뒤 효종은 그를 승지로 소환하여 이후 승정원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오랜 동안 승지로 있으면서 중간에 호조와 공조의 참의를 지내기도 했다.

이 글은 늘 왕을 지척에서 모시면서 바쁘게 지내던 시기에 쓴 글이다. 잠시도 여유를 차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고, 더욱이 맡은 일이 중요하여 핑계나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이 일하는 사람의 휴식과 여유를 갈망하는 심경이 잘 드러난다. 글쓴이는 몸에 병이나 나야 겨우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자신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동정을 표한다. “병이 든 것도 복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역설이 일에 내몰린 사람의 심경을 돋보이게 나타낸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리고 여유 있는 사회라고 생각되는 그 옛날에도 이렇게 바쁜 생활을 힘겨워하고 한가로움을 선망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