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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27 자신을 평가하여

by 혜당이민지 2008. 9. 16.

고전의 향기027      

자신을 평가하여

범중엄(范仲淹)은 제 자신을 평가하여 하루 동안 한 일과 그 날 먹은 식사가 서로 어울리면 잠자리가 편했고,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¹

나도 내 자신을 평가해 보았다. 나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낸다. 매일 아침 햇살이 창문을 훤히 밝히고 처마에서 떼를 지어 새가 재잘거리며, 농사꾼들의 농부가가 사방에서 일어난 뒤에야 나는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깨면 눈을 비빈다. 그리고 눈을 꼭 감고서 진감(震坎)을 건너고 금화(金火)를 엎드리게 한 다음² 천천히 눈꺼풀을 연다. 질화로에 묻어둔 묵은 불씨를 뒤져서 담뱃불을 붙여서 입냄새를 없앤다.

그제야 의관을 갖춰 입고 양치하고 세수한다. 그것이 끝나면 또 눈을 감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와 한유(韓愈)의 묘지명(墓誌銘) 약간 편을 읽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노곤해질 때면 안궤에 기대 누워서, 책시렁 위에 놓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주(周)나라의 《시경(詩經)》과 초(楚)나라의 《이소(離騷)》, 《춘추좌전(春秋左傳)》,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 《송명신록(宋名臣錄)》, 《세설신어(世說新語)》, 《정씨유서(程氏類書)》, 《기언(記言)》³ 따위를 마음가는대로 뽑아서 읽는다.

정오가 되어 산처(山妻)가 들에 밥을 내간 뒤에 남은 밥과 남은 나물을 내오면 막걸리에 맑은 차[淸茶]를 마신다. 흔쾌하게 거나하도록 술도 마시고 점심을 든 다음에는 비뚜름하게 두건을 걸치고 뒷짐을 지고서 사립문을 나서서 지팡이를 짚고 선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수그리고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주변에 서있는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에 시선을 던지는데 마침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채 지나가는 이웃 사람이 보여 손을 들어 불러 세운다. 농사하는 이치를 놓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토질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도 하며, 보리는 얼마나 거뒀는지 모내기는 이른지 빠른지를 묻기도 한다.

기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집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상고적 요가(요歌)⁴와 한위(漢魏)시대의 악부(樂府), 당송(唐宋) 때의 율시와 절구를 가져다가 반복하여 읊조린다. 벽 위에는 혜포(蕙圃, 姜樸), 약산(藥山, 吳光運), 돈와(遯窩, 任守幹)를 비롯한 여러 벗들이 이별하며 준 시와 수운(峀雲, 柳德章)의 묵죽화와 서양(西洋)의 신화(蜃畵)가 널려 있어 차례로 감상한다. 또 역대의 도경초(圖經草)와 서귀록(西歸錄) 한두 장을 읽는다.

1) 범중엄이 한 말은 글쓴이가 읽은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나온다.
2) 진감 이하의 내용은 미상임.
3) 미수 허목의 문집.
4) 징을 두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로 군악(軍樂)의 하나. 요 : 징, 떠들썩하다. 金+堯.

저녁때가 다가와서 그늘이 짙어지면 마을 동쪽에 있는 수양지(壽陽池)에는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낚싯대를 챙겨서 친구 몇이서 약속하여 낚시터로 내려간다. 방죽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 아래 낚싯대를 던지고 함께 앉는다. 한참을 앉아 있으면 숲 그늘이 온 몸을 덮고 마름풀은 우리를 에워싼다. 시원스러워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한가로이 벗과 대화를 나누는 장자(莊子)¹가 된 느낌이 든다.

이윽고 어둠이 몰려와서 연못에는 아스라이 달이 잠긴다. 마침내 낚싯대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깨에는 낚싯대를 걸치고 그 끝에는 물고기 바구니가 매달려 있다. 집에 도착하자 집사람이 겨자를 빻아서 초장을 만들고, 며느리는 도마를 씻어서 기다린다. 바구니를 기울여 물고기를 꺼내자 크고 작은 금빛 잉어 은빛 붕어가 수십 마리이다. 물고기 회를 쳐서 밥과 함께 먹는다.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쓰러져서 잠이 든다.

내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이란 고작 이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평가해보니 제멋대로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내가 오늘 먹은 식사에 어울리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놓고 달콤하게 잠을 이루니 범중엄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내게도 할 말은 있다. 조정에 머물면서 천하를 걱정하는 사람은 그 임무가 무겁고 책임이 크다. 또 그가 먹는 것은 임금의 녹봉이다. 녹봉으로 밥을 먹으면서 할 일을 태만하게 한다면 이야말로 일하지 않고 먹는 짓이다. 범중엄은 일하지 않았는데도 밥을 먹는 분이 아니다.

나는 맡아서 해야 할 직책이 없고, 남들에게 책임질 일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일개의 사람일 뿐이다. 이른바 “넉넉하고 한가롭게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다. 더욱이 내가 날마다 먹은 음식이라고 해봤자 풀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제멋대로라고는 하지만 내가 소비하는 음식에 어울린다고 할 만하다. 따라서 밥을 먹고도 내 마음은 편안하고, 내 마음이 편안하기에 내 잠도 편안하다.

공자는 “추구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사람마다 제 뜻대로 살아가면 된다.²

1) 《장자(莊子)》에는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량(濠梁) 위에서 노닐고 장자가 복수(복[水+僕]水) 위에서 낚시한 사연이 나온다. 후에 호량과 복수 사이의 생각, 즉 호복간상(濠복間想)은 '한가롭게 소요하고 아무런 욕심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2) 마지막 구절은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의 문장이다.

    △▲ 전가낙사(田家樂事)_부분_심사정_1761_개인소장

  - 강필신(姜必愼), 〈자계설(自計說)〉

해설


강필신(姜必愼, 1687∼1756)의 글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사경(思卿), 호는 모헌(慕軒)이다. 채팽윤(蔡彭胤)의 문인으로 171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켰을 때 공을 세웠다. 그러나 관운이 평탄치 못하여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고, 만년에는 대신을 비판하다가 관직을 내놓고 낙향하여 지냈다.

이 글은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 지낼 때 지은 것으로, 향촌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자신의 형편을 기록하였다. 벼슬하던 선비가 시골에 낙향했을 때 영위하는 생활의 한 단면이 잘 드러난다. 글은 그가 늘 읽었다는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나오는 범중엄의 태도에 촉발되어 나왔다.

강필신은 “세 끼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가 묘사한대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산다면, 선비로서 마음이 편할 리 없는 일이다. 선비라면 세상에 일정한 책임과 의무가 있기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이런 중압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더욱이 그는 오랜 동안 조정에서 벼슬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우선은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범중엄에게 부끄럽게 비춰진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제멋대로 여유롭고 한가롭게 살면서도 마음이 편하고 편한 잠을 자는 이유를 들이댔다. 한 마디로 벼슬에서 벗어났기에 이런 생활을 해도 무방하다는 논지다. 이러한 논지가 이 글의 중심주제이지만, 그러나 이 글의 묘미 중의 하나는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활이 자신의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벼슬에서 밀려났기에 마지 못해서 만들어진 여유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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