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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26 세상사는 맛

by 혜당이민지 2008. 9. 8.

고전의 향기026         (2008. 9. 8. 월)

세상사는 맛

우리 집에 손님들이 모여 세상 살아가는 맛을 두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떤 분이 그 맛이 쓰다고 말하자 어떤 분은 맵다고 말하고 어떤 분은 덤덤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맛이 달다고 한 분은 거의 없었다. 세상사는 맛은 하나이지만 그 맛을 보고서 제각기 자기 입맛대로 품평하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사람의 입맛은 하나이지만 세상맛은 다양하여 사람마다 제각기 한 가지 맛만을 느낄까? 그 여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오이 한 개는 지극히 작은 채소이다. 하지만 그 꼭지를 씹어 먹은 사람은 입맛이 쓰고, 그 배꼽 부분을 먹은 사람은 맛이 달다. 하물며 인간 세상은 크기 때문에 어떤 맛인들 갖추지 않았겠는가? 다만 이 가엾은 백성들의 삶은 한 가지 일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사느라,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입을 다른 데로 옮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소고기의 맛이 당연히 서쪽 나라의 약보다 달 것이다.

노자(老子)는 “다섯 가지 맛[五味]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간 세상은 크기 때문에 갖추어지지 않은 맛이 없다고 할진대, 세상맛을 본 사람 가운데 입맛이 상한 자가 많으리라. 따라서 인간 만사를 아무리 두루 맛보도록 한다 해도 진정한 맛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열병을 앓는 사람에게 미음죽은 맛이 쓰지만 똥물은 맛이 단 것과 같아서 합당한 이유가 없지 않다.

누군가가 세상맛이 쓴 것은 제 자신이 쓴 것이요, 세상맛이 단 것은 제 자신이 단 것이라고 말한다. 풀뿌리를 씹어 먹을 처지만 된다면 고기맛을 달갑게 잊을 수도 있다. 하는 일마다 마음에 들어야 세상사는 맛이 달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또 그렇지 않다. 씀바귀가 쓰지만 오히려 냉이처럼 편안히 즐길 만하다. 그러나 황벽나무 껍질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참을성이 있는 자라도 끝내 맛이 달다고 말하지 못한다. 성인의 큰 도량으로도 '현재 환난(患難)이 닥친 상황이라면 환난 속에서 행해야 할 도리를 행한다'¹고 말했을 뿐이다. 질병을 즐기고 평안함을 싫어하여 일반 사람의 호오(好惡)와는 반대로 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쓴 맛 매운 맛을 꼭 없앨 것은 아니고, 단 맛을 꼭 얻을 것은 아니다. 쓴 맛 매운 맛, 그리고 단 맛은 제각각 적절한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독한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칼날에 바른 꿀은 반드시 내 혀를 상하게 하는 법이다. 따라서 단단하다고 뱉고 부드럽다고 삼키는 짓이 자잘한 사람의 행동인 것처럼, 쓰다고 먹고 달다고 사양하는 짓 역시 중도(中道)를 걷는 군자(君子)의 행동은 아니다.

하늘이 만물을 만들 때 사물마다 적절하게 사용할 도구를 주었다. 발굽을 가진 동물은 풀을 뜯어 먹게 하였고, 어금니가 튼튼한 동물은 날것을 씹어 먹게 하였다. 말똥구리는 똥을 삼키고, 날다람쥐는 불을 먹는다. 야갈(野葛)²은 독성이 몹시 심해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반드시 넘어뜨려 죽이지만, 범이 먹으면 백일 동안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한다. 솔개는 썩은 쥐를 꿩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매와 더불어 사냥솜씨를 겨루지 못한다.

무릇 사물이 얻는 모든 것은 운명이므로 거부할 수가 없다. 내가 맛이 단 것을 반드시 취하고자 할 때 맛이 쓰고 매운 것은 그 누구에게 버리겠는가? 단 것은 내 복이요, 쓰고 매운 것은 나의 분수이다. 분수를 넘어서고 운명을 어긴다면 큰 손해를 불러들이지 않을 자가 거의 없다. 오로지 군자라야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마는 그 맛을 잘 아는 자는 드물다.”라고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 담와 홍계희 평생도 중 치사(致仕)_〈조선시대풍속화〉중에서_국립중앙박물관소장

  - 유희(柳僖), 〈석미(釋味)〉, 《문통(文通)》

1)《중용(中庸)》 14장.
2) 칡의 일종으로 독성이 강하다.

해설


유희(柳僖, 1777~1837)가 쓴 글이다. 18~19세기에 걸쳐 활동한 유희는 《언문지(諺文誌)》를 편찬하는 등, 실학적 사유를 담은 책을 저술한 학자로 명성이 높다. 글의 원 제목은 입맛을 해명한다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입맛은 음식의 맛이라기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맛, 나아가 인생의 맛을 뜻한다.

자신의 집에 친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세상사는 맛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사람들은 흔히들 세상 살기가 쓰니 다니 말한다. 우연한 대화를 바탕으로 그는 인생의 맛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를 펼쳤다. 누구라도 한번쯤 느꼈거나, 화제로 올렸을 법한 주제이다.

유희는 세상의 맛을 인식하기도 쉽지 않고, 또 진정으로 세상맛을 알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작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도 커서 그 안에는 온갖 맛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다.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자기가 체험하는 삶의 내용에 따라 쓰기도 맵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체험하는 것에 따라 세상사는 맛은 천차만별이다.

누구나 세상맛이 달기를 바라지만 대체로 세상맛은 쓰거나 맵다. 쓰고 맵다고 해서 그 맛을 맛보지 않을 수 없고, 단맛만을 취할 수도 없는 일이다. 유희는 “단 것은 내 복이요, 쓰고 매운 것은 나의 분수이다.”라고 하여 분수를 지키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올바르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체념이기보다는 달관이다.

세상맛이란 사람에 따라 나라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똑같은 사람이라도 나이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에서 말하는 맛은 한 사람의 전 인생에서 바라본 세상사는 맛이다. 세계관과 인생관이 이 맛에 표현된다. 그렇듯이 각자가 내 인생의 맛은 무어라고 평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유희의 이 글은 흥미롭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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