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중엄(范仲淹)은 제 자신을 평가하여 하루 동안 한 일과 그 날 먹은 식사가 서로 어울리면 잠자리가 편했고,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¹
나도 내 자신을 평가해 보았다. 나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낸다. 매일 아침 햇살이 창문을 훤히 밝히고 처마에서 떼를 지어 새가 재잘거리며, 농사꾼들의 농부가가 사방에서 일어난 뒤에야 나는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깨면 눈을 비빈다. 그리고 눈을 꼭 감고서 진감(震坎)을 건너고 금화(金火)를 엎드리게 한 다음² 천천히 눈꺼풀을 연다. 질화로에 묻어둔 묵은 불씨를 뒤져서 담뱃불을 붙여서 입냄새를 없앤다.
그제야 의관을 갖춰 입고 양치하고 세수한다. 그것이 끝나면 또 눈을 감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와 한유(韓愈)의 묘지명(墓誌銘) 약간 편을 읽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노곤해질 때면 안궤에 기대 누워서, 책시렁 위에 놓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주(周)나라의 《시경(詩經)》과 초(楚)나라의 《이소(離騷)》, 《춘추좌전(春秋左傳)》,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 《송명신록(宋名臣錄)》, 《세설신어(世說新語)》, 《정씨유서(程氏類書)》, 《기언(記言)》³ 따위를 마음가는대로 뽑아서 읽는다.
정오가 되어 산처(山妻)가 들에 밥을 내간 뒤에 남은 밥과 남은 나물을 내오면 막걸리에 맑은 차[淸茶]를 마신다. 흔쾌하게 거나하도록 술도 마시고 점심을 든 다음에는 비뚜름하게 두건을 걸치고 뒷짐을 지고서 사립문을 나서서 지팡이를 짚고 선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수그리고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주변에 서있는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에 시선을 던지는데 마침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채 지나가는 이웃 사람이 보여 손을 들어 불러 세운다. 농사하는 이치를 놓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토질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도 하며, 보리는 얼마나 거뒀는지 모내기는 이른지 빠른지를 묻기도 한다.
기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집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상고적 요가(요歌)⁴와 한위(漢魏)시대의 악부(樂府), 당송(唐宋) 때의 율시와 절구를 가져다가 반복하여 읊조린다. 벽 위에는 혜포(蕙圃, 姜樸), 약산(藥山, 吳光運), 돈와(遯窩, 任守幹)를 비롯한 여러 벗들이 이별하며 준 시와 수운(峀雲, 柳德章)의 묵죽화와 서양(西洋)의 신화(蜃畵)가 널려 있어 차례로 감상한다. 또 역대의 도경초(圖經草)와 서귀록(西歸錄) 한두 장을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