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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09 임술년의 추억

by 혜당이민지 2008. 5. 19.

고전의 향기009          (2008. 5. 12. 월)

임술년의 추억


먼 옛날의 임술년에는 동파거사(東坡居士)가 시월 보름날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했었고, 가까운 옛날의 임술년에는 내가 시월 열흘에 열수(洌水) 정약용(丁若鏞) 선생께 배움을 청했었다. 고금(古今)에 한 일이 다르건만 어쩌면 이렇게도 해와 달과 날이 우연히 딱 맞아 떨어지고, 이처럼 서로 비슷한 것일까?

그런데 올해 또 임술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미 흘러간 옛날을 되돌아보며 때와 날짜를 두루 헤아려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한 시대의 시름 많은 사람이라 할 만하구나!

내가 스승님께 배움을 청한 지 이레가 되던 날, 스승님은 문사(文史)를 공부하라는 글을 내려주셨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산석에게 ‘문사(文史)를 공부하도록 하라’고 말했더니 산석이 머뭇머뭇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핑계를 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한테는 병이 세 가지가 있어서요.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꽉 막혔고, 셋째는 미욱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공부하는 자들은 큰 병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는데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이는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단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질 것이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날 것이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

△▲ 다산이 황상에게 써준 면학문. 후에 다산의 아들 정학연이 다시 썼다.

이 때 스승님은 동천여사(東泉旅舍)에 머무르고 계셨다. 나는 나이 15세 소년으로 아직 관례(冠禮)도 올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6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책을 놓고 쟁기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말씀만은 늘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먹과 벼루에 젖어있다. 비록 이뤄놓은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공부에 파고들고 막힌 것을 뚫으며 닦으라는 가르침을 삼가 지켰다고 말하기에는 넉넉하며,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라는 당부를 받들어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내 나이 75세다. 내게 남은 날짜가 많지 않으니 어찌 함부로 내달리고 망령된 말을 할 수 있으랴? 지금 이후로 스승님께 받은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제자로서 스승님을 저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에 임술기를 짓는다.  

- 황상(黃裳), 〈임술기(壬戌記)〉,《치원유고(치園遺稿)》

해설


이 글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가르친 제자 황상(1788~1863?)이 쓴 〈임술기(壬戌記)〉이다. 황상의 나이 75세 때 자신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임술년을 다시 맞아 쓴 것이 이 글이다.

글의 서두에는 그의 감개한 기분이 표현되어 있다. 1082년 임술년에는 소동파(蘇東坡)가 적벽강에서 노닐고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壬戌之秋 七月旣望..)”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 그로부터 720년이 지난 1802년의 임술년에는 자신이 정약용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나의 운명을 바꾼 임술년의 이 공교로운 일치! 그로부터 다시 60년이 지난 1862년의 임술년에 지난 일을 추억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신이 60년 동안 지켜온 삶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임술기〉를 쓰는 연유를 밝혔다.

이 글은 1802년 강진의 동천여사에서 15살 난 황상에게 다산 정약용이 써준 면학문(勉學文)을 중간에 넣고 그 앞뒤에 이 글을 추억하는 이유와, 이 글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배치하고 있다. 글의 구조는 단순하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정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진정이 흐른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격려문을 공부하는 지침으로 삼아서 60평생을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노학자가 담담하게 회고하는 삶은 진중한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스승과 제자가 일궈낸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좋은 글이다.

〈임술기〉에 액자처럼 들어가 있는 다산의 면학문은 이른바 삼근계(三勤戒)이다. 다산은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는 15세 소년 제자에게 그 모자람이 바로 장점이라고 용기를 북돋는 글을 직접 써서 주었다. 눈에 띄는 재능을 믿고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 남에게 뒤쳐지는 재주를 근면함과 열성과 끈기로 극복하는 것이 진정 공부하는 법이라고 다산은 어린 제자를 격려했다. 그의 격려가 어린 황상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자극으로 다가왔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이 면학문의 원본이 전한다. 위의 그림이 그것이다. 그런데 원본은 다산의 글씨가 아니라 맏아들 정학연이 다시 쓴 것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다산이 쓴 친필이 닳고 닳아서 아들인 정학연이 친구인 황상에게 다시 써서 선물하였다. 1854년 정학연이 72세, 황상이 67세 때 다산의 묘에 참배하러 세 번이나 찾아온 황상에게 정학연이 써준 것이다.

정학연은 아버지의 글을 다시 쓰고 나서 “오른쪽 한 편의 글은 열수선생이 쓰신 면학문으로, 쓴 때는 임술년 10월 17일이요 황상의 나이 15세였다. 본래의 종이가 해지고 찢어져 다시 기록하여 첫머리에 싣는다. 산석은 황상의 어릴적 이름이다.”라는 내용의 발문을 뒤에 붙였다. 스승이 써준 면학문을 닳고 해질 정도로 간직한 황상의 정성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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