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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06 밥상 위의 꽃

by 혜당이민지 2008. 5. 1.

밥상 위의 꽃

1.

내가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도내를 순찰하다가 강계부(江界府)에 이르렀다. 강계부 기생들이 밥상을 들어서 내오는데 밥상에는 이른바 수판(繡瓣)이란 것을 세워놓았다. 연꽃잎과 꽃 속에 놓아둔 동자의 형상이 기교의 극치를 이뤄서 휘황찬란함이 앉은 자리를 빛냈다. 그때 부사가 곁에 있길래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강계부는 궁벽한 변방 땅인데 누가 이러한 기교를 익혔나요?”
그러자 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 일꾼 중에 업으로 이것을 만드는 자가 있는데, 마침 서울로부터 왔기에 만들게 시켰습니다.”
밥상을 물리고 난 다음 나는 기생에게 분부했다.
“수놓은 연꽃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거라!”

나는 이런 따위의 물건을 좋아하는 성질이 아니지만 남이 힘들여 만든 물건을 밥상을 물리자마자 삽시간에 부숴버릴까봐 아까워서 그랬던 것이다.

2.

그로부터 압록강 가에 있는 다섯 고을을 순찰하였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식사를 내오는 밥상에 비록 수판이랄 것은 없지만 종이를 자르고 색칠하여 꽃을 만들어 붉고 푸른 꽃과 잎을 밥상에 넘치도록 쌓아놓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관서 땅의 촌스러움을 비웃었다.

의주에 이르렀을 때 의주부윤이 말끝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의주부에는 화장(花匠)이 없어 마음에 드는 꽃을 밥상에 올리지 못하오니 부끄럽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말하는 것이 이상하여 대답삼아 내가 물었다.
“밥상 위에 꽃이 없어도 좋은데 어째서 굳이 그런 말을 하시오?”
내 물음에 부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또께서 강계부에 가셨을 때 수놓은 연꽃을 두고 어떤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또의 동정을 살피던 각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들 사또께서 꽃을 몹시도 사랑하시니, 만약에 꽃으로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면 일이 결코 안 풀릴 것이라는 첩보를 전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고을마다 모두들 겁을 내면서 남보다 꽃을 더 잘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부에서도 그리 하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송구스럽게 생각할 뿐입니다.”

3.

그제야 나는 강계부에서 한번 있었던 일을 우연히 남들이 엿보고서 지레 짐작하여 지나는 고을마다 폐단을 일으켰고, 그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되레 관서 땅을 촌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연을 의주부윤에게 말해주고 한번 웃어넘기고 말았다.

아아! 관찰사는 그저 도백(道伯)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각 고을에서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필코 엿보고서 비위를 맞추어 환심을 사려고 한다. 그들의 목숨이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군주는 존귀하기가 하늘과 같아서 억조창생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그 한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을 자 누구이겠는가? 그런데 군주가 좋아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요, 좌우에서 엿보는 자는 몇 백 몇 천일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 중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바르지 않다면 왕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아침저녁으로 엿보면서 은근하게 짐작하여 내뱉는 말마다 영합하고 하는 일마다 받아들여서 군주가 끝없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한 뒤에는 현자를 헐뜯고 능력있는 자를 질투하며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독수를 은밀하게 뻗으니, 이에 따라 나라가 기울고 뒤집어지는 일이 역사에 가득 널려있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내가 밥상 위의 꽃을 두고 벌어진 일을 겪고서 남들의 윗자리에 있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을 짓는다.

- 채제공(蔡濟恭), 〈안화설(案花說)〉, 《번암집(樊巖集)》

  △ 평양감사 향연도 중 연광정 연회도(부분)_김홍도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한국문집총간 236집 《번암집》 58권 설(說)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설


채제공(1720~1799)이 1786년 평안병사(平安兵使)가 되어 평양에 부임하였는데 그 때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수판(繡瓣)은 종이 따위를 소재로 써서 만든 일종의 조화(造花)이다. 이 글에 나온 사실로 보아 조선후기에는 조화를 만드는 수공예가 상당히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지닌 평안도의 최고 책임자로서 채제공은 각 고을을 순시하다 우연히 밥상을 장식한 수판을 목격한다. 강계부사의 솜씨 좋은 일꾼이 우연히 만들어 귀한 분의 밥상을 화려하게 장식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정성을 기울여 만든 수공예품이 밥상을 물리면 바로 부서질까봐 아까워 그대로 두라고 말한 것이 남들에게는 병사가 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가 순찰하는 고을마다 꽃을 만들어 밥상에 놓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말할 것도 없이 병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채제공 자신은 왜 고을마다 밥상에 조화가 오르는지 의아해 했다. 그러다 의주부윤과 대화하면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씁쓸해하는 한편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조정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고, 그것이 국가의 전복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그의 경고는 아주 타당하다.

그런데 이 글의 내용과 저자의 경계는 봉건 시대의 낡은 이야기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 사는 사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권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부패도가 심한 사회에서는 힘을 가진 자의 비위를 맞추기에 애쓰다보니 유사한 일들이 일상사처럼 벌어질 듯하다. 정부와 군대, 관공서와 기업 같은 조직에서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 장담할 자가 누가 있을까?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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