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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08 홍도정 우물물을 마시며

by 혜당이민지 2008. 5. 19.

 

   홍도정 우물물을 마시며

 

백당(栢堂) 동쪽 산기슭에 샘이 하나 있는데 맑고 시원한 물이 솟아난다_1)
돌 틈에서 졸졸졸 흘러나오는 물은 흰 구름으로 뒤덮인 호젓한 골짜기를 씻으며 내려온 듯.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고, 거문고를 튕기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물은 예닐곱 걸음 정도를 감돌며 흐른 뒤 개울로 흘러 들어간다.
이 샘 옆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손으로 물을 움켜 떠 마시고는 기분이 상쾌해진다.

농서자는 푸성귀를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나서
손으로 뱃가죽을 쓱쓱 쓰다듬으며
너울너울 흔들리는 오사모(烏紗帽)를 비껴 쓴 채
용무늬 대나무 지팡이 또각거리며 짚고 문을 나선다.  
큰 바위에 걸터앉아 정강이를 걷어붙이고 두 다리를 쭉 뻗는다.
얼음 같고 서리 같은 물을 움켜쥐었다가 내려치기도 하며,
진주 같고 옥 같은 물을 삼켰다가 도로 뱉어내기도 한다.
불같은 햇볕을 피하는 데만 좋을까?
세상 먼지에 찌든 갓끈도 벌써 깨끗이 빨아 놓았다.

휘파람 느긋하게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개울 너머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여덟 자 넓이의 대자리를 펼쳐놓고서
두세 치 높이의 울퉁불퉁한 나무토막을 베개 삼아 베고 눕는다.
꿈속에 흰 갈매기를 만나 함께 놀다보니
기장밥이야 익든 말든 나는 몰라라 내버려 둔다_2)
여덟 마리 용을 타고 가볍게 요지(瑤池)로 날아가
서왕모(西王母)가 부르는 노래 한 곡을 듣고 온 듯_3)
호쾌하게 뗏목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갔다 돌아와
촉(蜀)나라 도성에서 점쟁이를 만나 놀란 듯_4)

그렇다면 굳이 비단 휘장을 40리에 뻗치도록 치고_5)
후추 8백 가마를 쟁여놓고_6)
황금 연꽃 동이에 물을 채우고서야_7)
내 발을 씻을 필요가 있으랴?

- 이인로(李仁老), 〈홍도정부(紅桃井賦)〉, 《동문선(東文選)》

   △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송도기행첩" 중 개경시가지 모습.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국학원전 《동문선》 2권 부(賦)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백당은 곧 옥당(玉堂, 한림원)을 가리킨다. 황명(皇命)을 문서로 작성하는 일을 맡은 한림원은 개성 궁궐 안의 건덕전(乾德殿) 서남쪽에 있었다.

2)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 도사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의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노생(盧生)이 신세 한탄을 하다가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은 꿈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던 기장밥은 미처 다 익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하였다.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3) 중국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곤륜산에 사냥을 갔을 때 서왕모를 만나 요지(瑤池)에서 함께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4) 어떤 사람이 황하의 근원을 찾으러 갔을 때 빨래하는 아낙을 만나 물었더니 “이곳이 천하(天河)”라고 대답하였다. 그녀가 돌 하나를 주기에 돌아와서 엄군평(嚴君平)에게 묻자 “이 돌은 직녀가 베틀을 받치는 돌”이라고 대답했다. 엄군평은 촉나라의 서울 성도(成都)에서 점쟁이 노릇을 한 도사이다.

5) 진(晋)나라의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은 천하의 부호로서 서로 부를 가지고 경쟁하였다. 왕개가 재물을 자랑하려고 자사보장(紫紗步障)을 40리에 걸쳐 치자, 석숭은 금보장(錦步障)을 50리에 걸쳐 펼쳤다.

6) 당(唐)나라 원재(元載)는 큰 부자였다. 뒷날 범죄를 저질러 그의 재산을 빼앗았을 때 집에는 후추만 해도 8백 가마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7) 당나라의 재상 단문창(段文昌)이 어렸을 때 몹시 가난하였다가 부귀하게 된 이후에 황금 연꽃 동이에 물을 담아 발을 씻었다. 서상(徐商)이 편지를 보내 질책하자 그는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한 평생 없이 산 것을 갚을까 한다”고 말했다.

해설


이 글은 《파한집(破閑集)》의 저자로 유명한 이인로(1152~1220)가 지은 부(賦)로서 짧고 서정적인 작품이다. 지은이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이므로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8백년 전의 글인 셈이다. 이 글에 나오는 농서자가 바로 이인로이다. 그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재사로서 평생을 한림원(翰林院)에서 군주를 위해 글짓는 일을 하였다.

한림원은 궁궐 안의 건덕전(乾德殿) 서남쪽에 있었는데 그가 사는 집도 거기에서 가까웠다. 그가 살았던 마을은 홍도정리(紅桃井里)라는 곳인데 《파한집》에서 자신과 함순(咸淳)이란 친구가 함께 홍도정리에 담을 맞대고 같은 골목에서 산다고 밝혀 놓았다.

이 글은 《동문선》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는데 이 글 덕분에 개경에 홍도정이란 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을 수백 년이 지난 후세에도 증명하게 되었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집에 물러나와 있을 때 그는 아무런 거침이 없이 동네에 있는 우물까지 산책하고 약수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이 글은 그런 즐거움을 잘 묘사하여 작품화하고 있다. 8백년 전 관료의 일상생활이 이렇게 잘 표현된 작품도 그다지 많지 않다.

샘 옆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을 상쾌하게 만드는 우물을 통해서 그는 도회지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분수를 지키는 생활을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거듭 말하고 있는 대목은 체념과 달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을 표현한 것으로도 읽힐 만한 요소가 있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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