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고전의 향기041 - 화기(和氣)가 모이는 문

by 혜당이민지 2010. 8. 20.

고전의 향기041       

화기(和氣)가 모이는 문

집화문(集和門)은 남간(南澗) 초가집의 중간에 있는 작은 문이다. 높이는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가고, 넓이는 쟁반을 받들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이며, 문설주는 자귀로 다듬지 않아 거칠다. 이렇듯이 보잘 것 없고 거친데도 불구하고 멋진 이름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기쁨을 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아들 셋을 두었다. 며느리를 얻었는데 모두들 유순하고 어질어서 동서들 사이가 친하여 화락하였다. 비록 죽을 때까지 함께 산다 해도 틀림없이 다투는 말이 없으리라. 단지 집은 좁고 식구는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분가할 계획을 세웠다. 일찍이 아내와 상의하여 10여 칸 집을 지어서 둘째와 셋째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도록 했다. 이런 계획이 다 완성되었는데 아내가 불행히도 세상을 떴다. 나 홀로 고심하고 노력하여 겨우 집을 세울 수 있었다.

동쪽 다섯 칸은 둘째의 집으로 하고 서쪽 네 칸은 막내의 집으로 했다. 앞 두 칸은 마구간 두 채를 만들었고, 마구간 위에는 머슴방을 만들었다. 동서의 중간에 작은 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집화문이다. 나는 두 아들 며느리가 이 문을 오가면서 화기애애하게 서로 즐겁게 지내면서 끝까지 화기(和氣)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화기를 잃지 않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병이 생겼을 때 서로 구완하고, 재물이 없을 때 서로가 도와주며, 가난하고 부유함이 같지 않아도 상대를 부러워하지 않고, 재능이 각자 달라도 서로 시기하지 않는 데 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화목하지 못할 일이 있으랴? 이것이 집화문이라 이름지은 까닭이다.


◀◁ 중문


집을 나누는 날 내가 보니 며느리 셋이 그릇을 서로 양보하느라 서너 번씩 오가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 또한 풍속이 타락한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찌 이 문에 함부로 이런 이름을 붙였겠는가?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처음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끝까지 좋은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그러니 처음이 좋다는 이유로 끝까지 잘 되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아들과 며느리들은 이 점을 명심해서 노력해야 하리라. 그래서 이 기문을 지어 문 위에 걸어둔다. 기축년 늦여름 하순에 병든 남간옹(南澗翁)이 쓴다.

- 유도원(柳道源), 〈남간집화문기(南澗集和門記)〉, 《노애집(蘆厓集)》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238집 《노애집(蘆厓集)》 7권 잡저(雜著)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해설


유도원(1721~1791)은 영남 남인으로 안동(安東) 수곡(水谷)의 명문가인 전주(全州) 유씨(柳氏) 집안의 학자이다.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게 배웠다. 한평생 학자로 살면서 퇴계(退溪)의 문집을 고증하고 주석을 가한 《계집고증(溪集攷證)》을 편찬하였고, 문집을 남겼다.

이 글은 집 옆에 새 집을 지어 아들을 분가시키면서 며느리들 사이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썼다. 1769년 그의 나이 49세 때의 글이다. 그 전 해에 그는 부인을 잃었다. 맏아들과 함께 살면서 집 옆에 새로 집을 지었는데 한 채에 둘째 셋째가 함께 살도록 짓고, 그 중간에 작은 문을 내어 드나들게 했다. 그 문에 집화문(集和門)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그 위에 이 글을 써서 붙였다. 이 이름은 ‘화기가 모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며느리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서로 오가는 문에 이러한 의미를 붙여두어 형제들끼리 며느리들끼리 우애하며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유도원이 소망한 것처럼 자식들이 한집에서 함께 사는 것은 지난날 대가족 제도 속에서 흔히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 우애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다. 글쓴이 자신도 삼형제가 함께 살았다. 아들 범휴(範休), 낙휴(洛休), 현휴(玄休)를 두었고, 며느리들이 서로 우애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과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가족의 의미와 형제간의 정이 그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으나 이런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마음이 샘솟게 만든다.

 

   필자 : 안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