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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고전의 향기039 -단란했던 옛날

by 혜당이민지 2010. 8. 20.

 

단란했던 옛날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고, 한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일이다. 세월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늙음이 닥쳐오고, 벌어진 일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즐겁게 지내기가 갈수록 어렵다. 더욱이 그 사이에 돌아가신 분과 살아남은 사람이 갈려서 하늘과 신에게 원망할 일이 많아졌으니 말해 무엇 하랴?

계미년(1643)에 집안 어른께서 금릉(金陵, 금산군)의 원님 자리를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오셨을 때가 생각난다. 키 작은 어린 아이로서 나는 방에 들어가 집안 어른들과 형님들께 절을 하여 조카로서 예를 갖추었다. 그때에는 두 집안의 자제들이 무려 수십 명에 이르렀고, 무리를 이뤄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겁게 노느라고 사람 사는 일이 손쉽게 바뀌는 것도 모르는 채 단란하게 모여 사는 커다란 즐거움을 다행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그로부터 이태 뒤에 순성(蓴城, 태안군)에서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가 삼년이 지나 돌아와 보니 남자는 장가들고 여자는 시집가서 제각기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렇게들 각각 사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으니 지난날처럼 즐겁게 지내는 일은 갈수록 드물어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두 집안의 부모형제들이 병도 없고 사고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또 그로부터 이태가 지나 영주(永州, 영천군)에서 돌아온 뒤로부터 지금까지 8, 9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사람 사는 일은 날마다 틀려지고 돌아가시는 분을 애도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마다 불현듯 남아있는 자로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슬픈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이란 이렇듯이 영원하지 않구나.

인생은 늙기 쉬워 한 백년을 허둥지둥 보낸다. 어째서 한 집안에서 즐거움을 함께 나누던 사람이 중년의 나이도 되지 않아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는단 말인가? 하늘과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자신이 인생에 달관한, 통 큰 사람이 아니고 보니 깊이 애통해하고 길게 서러워하면서 지난날 사연에 감정이 뭉클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아, 슬픈 일이다! 인간 세상이란 이렇듯이 감정에 휘둘리기 쉽구나! 인간 세상이란 이렇듯이 감정에 휘둘리기 쉬워!

지난날 청년 장년이던 사람은 그다지 늙지도 않았건마는 강보에 누워있던 아기들은 벌써 다 자라 있다. 설령 잠깐 사이나마 즐거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사연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까닭은, 돌아가신 분들을 향한 남아있는 자의 슬픔이 가슴 속에서 솟아날까봐 걱정돼서다.


◀◁ 신익상초상화_신영수소장_역대인물초상화대사전


아! 사람으로서 이런 처지에 이른다면 어떻게 하늘과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나는 40세를 살지 50세를 살지 아직 알 수가 없지만, 내 나이 수십 년을 잘라내서 지난날의 반나절의 즐거움과 바꾸고 싶다마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랴? 옛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뜻대로 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보다 시름겨운 것은 없다.”

정말 음미할 만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탄식이 새어나오는 것을 금할 수 없다. 무술년 첫봄에 쓴다.

- 신익상(申翼相), 〈감구서(感舊序)〉, 《성재유고(醒齋遺稿)》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146집 《성재유고(醒齋遺稿)》 9권 서(序)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해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우울함과,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한 가까운 가족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서글퍼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글을 쓴 신익상(1634~1697)은 소론계(少論系) 사대부로서 숙종 임금 때에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냈다.

어린 시절 대가족 사이에서 즐겁게 지내던 일을 무한한 감개를 담아 썼다. 이 글을 쓴 때는 의외로, 글쓴이가 밝힌 것처럼, 무술년(1658년)으로 그의 나이 25세 때이다. 한창 청년의 시기에 이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감개에 젖은 이유가 무엇일까?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두 누님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신익상의 문집에는 같은 해 여름에 쓴 같은 제목의 글이 한 편 더 실려있는데 직전에 죽은 두 누님을 간절히 그리며 썼다. 젊은 나이에 죽은 누님들의 죽음으로 인해 글쓴이는 인간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는다. 누님의 죽음은 즐거움으로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을 자꾸만 떠오르게 만들고, 가족들과 가꾼 추억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너무도 쉽게 변해가는 세월의 힘 앞에서 그 시절 추억은 더 아름답게 남아 있다.

글쓴이에게는 8형제가 있었고, 아버지 형제는 모두 넷으로 대가족이었다. 그렇지만 글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 신량(申량[水+亮], 1596~1663)이 구례, 금산, 태안, 영천, 안산, 청송, 담양, 해주 등지에서 지방관을 했고, 그 때마다 나이 어린 글쓴이는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그러다가 가끔 본가에 와서 대가족 사이에 묻혀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어느 순간 세월이 흐르고 아무 걱정 없이 놀던 형제들이 나이가 들고, 또 죽어서 곁을 떠나기도 하며 인간 세상의 사람 사는 길이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늘과 신을 원망이라도 하고픈 심경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어린 시절에 대한 무한한 감회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짙게 묻어난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