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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고전의 향기043-머리 좀 빗어라

by 혜당이민지 2010. 8. 20.

고전의 향기043      

머리 좀 빗어라

사람에게 머리털이 있는 것처럼 말에게는 갈기털이 있다. 세상에서 하는 말에 남에게 말을 맡길 때 “하루 먹을 콩은 주지 않아도 좋으나, 하루에 빗겨야 할 빗질은 잘 해다오”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이것은 말에게 말갈기를 빗질하는 것보다 절실한 바램이 없음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가 돗자리를 짠 것처럼 봉두난발에다, 때가 소똥 같이 덕지덕지 끼어 있으며, 머리털에 서캐 알이 엉겨 붙어서 실로 꿰맨 것처럼 뽀얗게 보인다고 하자. 낮에는 망건으로 머리를 감싸서 요행히 남들이 보지 못하지만, 밤이 되면 밤새도록 긁어대기 때문에 귀밑머리와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질해서 다듬을 줄을 모르니 사람이 돼서 말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여기에 말 두 마리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갈기를 빗질해 주기에 털이 번들번들하여 빛이 나서 보기에도 멋지다. 다른 하나는 주인이 사랑하지 않고 그저 물건을 싣거나 타고 다니며, 꼴이나 베어다 준다. 어쩌다 마당에 끌어다 놓으면 말은 바로 땅바닥에 뒹굴면서 제 스스로 긁는다. 그러다 보니 진흙과 먼지는 머리와 등짝을 뒤덮고, 궁둥이는 돼지 궁둥이 꼴로 변해 더 이상 말다운 꼴이 없다. 만약 말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가려움증을 하소연하면서 빗질은 하지 않고 그저 콩과 꼴만 던져주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전에 나는 다지동(多枝洞)_1)에서 기남(己男)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두발 상태는 저런 꼴을 하고 있었지만 벙거지를 쓰고서 고을의 서원(書員)_2)이 되어 돌아다녔다. 내가 그에게 “당신은 평상시 한 달에 몇 번이나 빗질을 하는가?” 물었더니 그는 “저는 빗질을 성실하게 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 번씩 빠짐없이 빗어서 그냥 지나간 해가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선 상당히 우쭐하는 태도가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비웃고 말았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어둡고 어리석어 콩인지 보리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므로, 사람 사는 이치를 가지고서 꾸짖을 상대가 아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저 사람 수를 따지는데 숫자나 채울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 날이 저물기도 전에 먼저 잠들고 아침 해가 높이 뜬 이후에야 비로소 일어나서, 불쑥 밥 내오라 재촉하여 먹고 의관을 입고서 집밖으로 나온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적에 했던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서 그런 행동을 한다.

1) 다지동 : 충청도 예산의 지명으로 대지동(大枝洞), 또는 대지동촌(大枝洞村)이다. 본래는 입석소(立石所)로서 예산 관아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저자 집안의 세거지(世居地)이다.
2) 서원 :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배속되어 행정실무를 맡아보던 아래 등급의 아전.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 있는데 그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머리를 빗는 일이다. 온갖 방법으로 달래고 혼내고 하건마는 한 달에 한 번 빗질할 때도 있고, 열흘에 한 번 빗질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설렁설렁 꾸중이나 모면하고는 일어선다. 나는 아이들의 속내를 모르겠다. 아무래도 총명함이 부족하여, 때를 벗기면 머리가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에게 이로운 줄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밖에 나가 새 잡을 궁리만 하느라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마음이 없어 그러는 것일까?

△▲세마도(洗馬圖)_단원 김홍도_개인소장

나는 정말 걱정스럽다. 아이들의 기질을 바꾸고 싶다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기에, 그래서 아이들에게 독서를 열심히 하라고 권했다. 쉬지 않고 열심히 독서하여 점차 흥미를 붙여 깊이 들어간다면, 마음의 크기도 조금씩 넓어지고 정신도 조금씩 깨이리라.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역사책을 앞에 놓고 순(舜) 임금과 같은 인물이 되려는 의욕을 내어 학문에 힘을 기울이면서, 말[馬]의 갈기를 빗질해 주는 마음으로 자신을 깨우치고, 어둡고 어리석은 기남이 되지 않겠다고 자신을 경계하지나 않을까?

이러한 내용을 대강 써서 아이들에게 준다. 계유(癸酉) 동지 다음날에 쓴다.

- 이경전(李慶全), 〈소설시동자(梳說示童子)〉, 《석루유고(石樓遺稿)》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73집 《석루유고(石樓遺稿)》문집(文集) 일권(一卷) 설(說)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해설


이경전(1567~1644)은 대북파(大北派)의 영수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아들로서 이름난 문사이자 관료였다.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이 글에서는 둘이라고 했으므로 그가 젊었을 때 쓴 글로 보인다. 그가 동지 다음날 글을 써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내용은 아이들이 게을러 머리를 잘 빗지 않으므로 머리 좀 자주 빗으라는 당부이다. 머리를 자주 빗으면 개운하련만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이나 열흘에 한 번 빗을까 말까 한다. 문제는 단순히 머리를 빗지 않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머리를 자주 빗지 않는 것은 생활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질을 부지런하게 만들어야 그 다음에 공부도 가능하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생활태도가 걱정되어 두 가지 사례를 들어 깨우치려 한다.

하나는 말[馬]이다. 말은 배불리 먹여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말은 말갈기를 깨끗하게 해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기남이란 사내다. 일 년에 한 번 머리를 빗는다면서 깨끗한 척 우쭐대는 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두 가지 사례를 보면 사람보다 말이 낫다. 글쓴이는 기남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씻기를 싫어하는 것은 그 당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런 버릇을 그대로 지니면 나중에는 저 기남과 같은 자처럼 된다면서 아이들을 훈계했다.

동지는 작은설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생활태도를 바꾸라는 훈계를 거창하고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내용으로 하지 않고, 머리를 자주 빗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하겠는가?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