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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20. 찬보자비(晉)

by 혜당이민지 2010. 5. 1.

 

20. 爨寶子碑(晉)


<찬보자비>의 전체 명칭은 <진고진위장군건령태수찬군지묘(晉故振威將軍建寧太守爨君之墓)>로 동진 대형(大亨) 4년(405)에 세워졌다.  청나라 건륭 43년(1778) 운남성 곡청성(曲淸城)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양기전(楊旗田)에서 발견됐다.  현재는 곡단(曲端) 제일중학교의 찬비정(爨碑亭) 안에 있으며 <찬룡안비(爨龍顔碑)>와 더불어 ‘이찬(二爨)’이라 불린다.  서체는 예서와 해서의 중간으로 모두 13행이며 행마다 30자씩 씌어졌다.  아래에 제명이 13행으로 나열되었고 행마다 4자씩 씌어졌다.  그 서풍은 <중악영묘비(中岳靈墓碑)>와 매우 흡사하다.

이 비가 발견된 뒤 서예 학자들에게 매우 칭송을 받았으니 왕윤(汪鋆)은 《십이연제금석과안록(十二硏齊金石過眼錄)》에서 “비의 글씨가 졸박하고 옛 기운이 물씬거린다.”라고 했다.  강유위는 《광예주쌍즙》에서 “단정하고 소박하기가 옛 부처의 얼굴 같다.”라고 하면서 “소박하고 두터우면서 기이한 자태가 잘 나타나며 위비의 <영묘(怜廟)>와 <국언운(鞠彦雲)>과 더불어 모두 예서와 해서의 중간이며 가히 변체의 원류를 고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비에 씌어진 일종의 풍기(風氣)는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비를 보면 확실히 간고(簡古)하며 붓마다 거의 소박하고 착실하며 천진한 어린이의 성정이 흘러나온다.  횡법(橫法), 날법(捺法), 구법(鉤法) 등은 대부분 예서의 법을 취하면서도 ‘안불쌍비(雁不雙飛)’라는 병폐를 범하는 것을 돌보지 않았다.  사전(使轉)은 모나게 꺾어 예서도 아니고 해서도 아니게 처리했다.  수별(竪撇)은 때때로 위로 뽑아 둥글고 윤택하면서도 필력이 있게 하였으며, 또한 대부분 삼각점으로 이루어 능각이 돌출하여 매우 탄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糸’의 윗부분은 때때로 두 개의 삼각형을 하여 매우 어리석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가로획은 평평하고 세로획은 곧으며, 결체는 방정하면서 때로는 성글고 때로는 조밀하고 때로는 납작하고 때로는 길게 하였는데, 이는 상하좌우에 있는 필획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면 ‘黃’자는 위아래의 필획이 많기 때문에 길게 했고, ‘始’자는 좌우로 나뉘었기 때문에 너그럽게 했다.  한자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체자가 상당히 많다.  필획과 필획 사이가 마치 형세에 따라 나타난 것이 아니라 끼어서 나온 것과 같아 곳곳에서 치졸한 느낌이 나타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 비의 서체가 실제로 보기 좋지 않고 억지로 쓴 것 같아 처음 볼 때 이 비를 예술품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중간에 끊어진 행필이 매우 풍만하고 필치가 주저함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심도가 있는 입체감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이 비의 가장 큰 장점이고 또한 명석서(銘石書)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가 당연히 서예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남방의 문화는 장강 유역과 북방보다 빠르지 못했기 때문에 서체의 변천도 낙후됐다.  이 비의 서풍과 대량의 이체자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맹목적으로 너무 높게 평가할 수 없다.  <찬룡안비>를 포함하여 이 비는 단지 문자 발전 과정에서의 중간 형식으로 가장 진솔하게 이 시기의 동성(童性)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말한다면 이는 상당히 걸출한 것이며 또한 매우 높은 연구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를 이미 성숙한 성년의 작품으로 논한다면 아직 성숙되지 못한 천성을 높이 여기는 웃지 못 할 착오를 범할 것이다.  설사 인류가 시시각각으로 소박하고 참된 심리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그 의의는 다르게 나타난다.  어느 누구라도 자연스럽고 진솔한 것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결코 어린이를 모방해 그 진솔함을 나타낼 수 없다.  이 비는 마땅히 이러한 의의를 함유하고 있다.  이 비를 연습함은 필력을 위한 것이지 익숙함을 위한 것이 아니나, 이 비를 연습하면 틀림없이 의외의 수확을 얻을 것이다.  이것과 이러한 맛으로 이를 모방하는 것은 또한 별개의 문제이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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