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喪亂, 二謝, 得時帖(晉, 王羲之)
<상란, 이사, 득시첩(喪亂, 二謝, 得時帖)>은 하나의 종이에 행초서로 씌어진 것으로 모두가 왕희지가 쓴 서찰이다. 이 첩은 당나라 때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나라 감진(鑑眞)화상이 일본으로 갈 때 가져간 것이라 한다. 현재 일본 황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로가 28cm이고 가로가 63.7cm이다. <상란첩>은 8행이고, <이사첩>은 5행이고, <득시첩>은 4행이다. 이 3첩은 모두 왕희지 진적을 직접 모(摹)한 것으로 정신을 전하는 정도가 매우 강해 진적과 거의 다름이 없다. 이는 현재 왕희지 서예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의 하나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 가운데서도 <상란첩>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상란첩>은 다른 2첩과 같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풍신이 혁혁하고 이상한 정채로움이 있다. 그 용필은 마치 못과 철을 자른 것처럼 침착통쾌하고, 측필로 아름다움을 취하고 역필로 질박함을 취했으며, 둥근 필획은 절차고(折Ꟃ股)와 같고 모난 필획은 낭떠러지와 같다. 그 서풍으로 보면 마땅히 왕희지 만년의 필치로 <난정서> 이후의 것이며, 종횡으로 사전하는 것이 매우 노숙하다. 본문의 ‘痛貫心肝’과 ‘臨紙感哽’은 그 심정과 같으며 필묵 또한 무의식중에 써내려 가면서 변했다. 이른바 왕희지의 연미함은 이 첩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횡을 파괴하여 종을 이루며 빠른 필치로 썼기 때문에 감정이 물씬거리고 기운이 급하다. 붓을 크게 일으켜서 떨어뜨렸기 때문에 형세는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고, 봉망은 사람을 핍박하여 흩어진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모였고, 모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흩어졌고, 성글고 조밀한 사이에 정신과 감정이 홀로 이르렀다. 앞부분은 조금 엄정하고, 뒷부분은 성글고 방종하며, 종횡으로 필획이 꺾어지면서 정감이 더욱 물씬거리는 것이 <난정서>와는 서로 다른 경지를 이룬다.
<이사첩>은 사안(謝安) 아니면 사만(謝萬)에게 보낸 것인지 지금은 이미 고찰할 수 없다. 그러나 사씨 집안에서 왕희지와 가장 친밀하게 왕래를 했던 사람은 사안과 사만이라 할 수 있다. 이 서찰을 보면 용필의 결체가 <상란첩>보다 조금 거칠고 초서 성분이 매우 많다. 비록 거칠게 써내려 갔지만 필봉 사이에 붓털의 남긴 한이 없고, 점과 획 사이에 하나라도 붓의 성질에 합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을 보면 왕희지가 서예에 대한 장악이 확실히 높은 경지에 도달했고, 또한 그가 왜 ‘서성(書聖)’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첩은 경중과 강약의 변화가 매우 커서 혹 머무를 때는 편안한 산과 같고, 가벼울 때는 매미 날개와 같다. 필치는 둥글고 뜻은 유창하며 자태는 자연스럽고 예스럽고 질박하며 청아한 것이 뜻을 얻어 형태를 잊은 것 같다. 이 첩을 보면 왕희지의 용필은 측필의 묘함을 다했고, 측필을 한 다음 다시 중봉으로 돌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왕희지 용필의 진수이다.
<득시첩>이 앞의 것들과 다른 점은 독필(禿筆)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왕희지가 독필을 이와 같이 원숙하고 정묘하게 사용한 작품은 매우 드물게 보이는데, 특히 중간 2행은 필세와 사전의 오고 감이 매우 뛰어나다. 비록 바쁘게 써내려 갔지만 붓이 닿는 곳에서 일종의 조용하고 순수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치 상스러운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기상이 변화무쌍한 것과 같다. 이 첩은 고졸한 가운데 밝고 아름다움을 구했으며, 풍요롭고 윤택한 가운데 근골을 얻어 의태(意態)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조화의 묘한 이치를 얻었다. 이러한 서풍은 왕희지 글씨에서 매우 특수한 것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의 서풍을 진정 전면적으로 이해하고 장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마치 황정견(黃庭堅)이 《산곡제발(山谷題跋)》에서 “왕희지의 필법은 마치 맹자가 성(性)을 말하고 장자가 자연을 말하는 것과 같이 종횡으로 말함에 뜻과 같지 않음이 없다. 그러니 어찌 늘상적인 이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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