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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19. 압두환첩(晉, 王獻之)

by 혜당이민지 2010. 5. 1.

 

 

19. 鴨頭丸帖(晉, 王獻之)


이 첩은 왕헌지 것으로 세상에 전해지는 유일한 진적이다.  <압두환첩>은 묵적 견본(絹本)으로 모두 15자이며 초서로 씌어졌다.  일찍이 선화(宣和) 내부에 수장됐다가, 원나라 천력 3년(1330)에 가구사(柯九思)에 주었고, 명나라 만력(萬曆, 1573-1620) 연간에 오정가(吳廷家)가 수장했다는 현재는 상해 박물관에서 수장하고 있다.

이 첩은 비록 두 줄이지만 왕헌지의 풍류를 다하고 있다.  이른바 “왕헌지가 행초의 저울을 잡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첩이 바로 이 말을 대표하고 있으며 외탁법의 용필을 사용했다.  장회관은 《서단》에서 “왕헌지가 어려서 부친에게 배우고, 다음에는 장지를 학습하고, 뒤에는 제도를 개변해 별도로 그 법을 창출했다.  사심에서 나왔으나 아득히 하늘의 법과 합하고, 그 표일한 뜻을 보니 놀랍도다.  행초서에 이르러서는 흥이 합함이 마치 외로운 봉우리가 사방으로 빼어나 멀리 하늘 밖에서 나와 그 가파름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웅장함과 정신이 방종하고 신령스러운 자태가 빼어나다.”라고 했다.  이 평가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지금 이 첩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대초(大草)를 행서에 삽입해 크고 표일한 풍격을 열었다.  왕헌지는 후기에 ‘초성’이라 일컫는 장지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았다.  그러나 아깝게도 장지의 초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장회관의 《서단》에 그의 특징에 대해 “장지는 최원과 두도의 법을 배우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이를 변하여 금초를 만들어 그 묘한 정수를 전했다.  글자의 체세는 일필휘지를 하여 우연히 필획이 연결되지 않았어도 기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필획이 연결된 곳은 기후가 그 행간에 통한다.”라고 말했다.  이 첩은 진정 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를 하며 기세가 드높고 행서와 초서가 서로 섞여 굳세면서도 자유분방하다.  사전은 온전히 외탁법을 운용했으며, 필의는 강물이 곤두박질을 하며 뛰어올라 천리를 가도 쉬지 않는 것 같은 기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와 같지만 미친 듯하게 흐르지 않았으니 이것이 가장 고귀한 점이다.  이는 마치 장회관이 말한 “오직 왕헌지만 장지의 깊은 뜻을 밝혔다.  그러므로 행의 머리글자가 왕왕 앞 행의 끝을 이었으니 이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필서’로 장지로부터 나왔다.”라는 것과 같다.  기운생동한 것으로 말한다면 왕헌지가 확실히 그의 부친을 능가한다.

둘째, 필묵은 정교하고, 필의는 고원하다.  이 첩의 용필과 용묵은 매우 대담하다.  필획이 둥글고 자유분방하면서 표일하나 모두가 질기고 굳세며, 필의는 오래된 등나무를 에워싸면서도 필력은 종이 뒤를 뚫은 것 같다.  먹색을 보면 단지 두 번만 적신 것 같으니 처음은 ‘鴨’에서 ‘佳’자까지이고, 다음은 ‘明’에서 끝까지이다.  처음 먹을 적셨을 때는 적당했으나, 다음에는 격정이 일어나 먹을 흠뻑 적셔서 붓을 내려 그었기 때문에 먹물이 번졌다.  그러므로 ‘明’의 왼쪽이 온통 검게 되어 겨우 윤곽만 남게 되었으나 오히려 전체 운필의 리듬감이 더욱 생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왕희지 글씨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셋째, 비록 두 줄이지만 장법의 안배가 매우 형체를 얻었다.  즉 바르고 기운 것, 크고 작음이 착락을 이루며 운치를 얻어 매우 잘 어울린다.  글자와 글자의 결구는 마치 문장과 시를 쓰는 것과 같아 강약의 박자와 구두점이 있다.  이 첩은 3글자가 한 조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체 글씨의 운치가 더욱 생동감을 발한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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