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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으니, 남시보(南時甫)1)가 나를 두고 위아지학(爲我之學)2)을 한다고 했다 합디다. 위아지학은 내가 본디 하지 않지만 나의 행적이 위아지학과 매우 흡사하기에 그 말을 듣고는 식은땀이 흘러 옷을 적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겉으로 드러난 행적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양씨(楊氏)3)가 아니면서도 위아(爲我)하는 듯이 보이는 옛사람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주자(朱子)는 불자(佛者)의 말을 인용하여,
이 심신을 가지고 모든 세상의 중생들을 받드는 것 將此心身奉塵刹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하네 是則名爲報佛恩4)
하였고, 또 두보(杜甫)의 시를 인용하여,
사방 이웃들이 쟁기를 잡고 나서니 四隣耒耜出 구태여 우리 집까지 잡을 것 있으랴 何必吾家操5)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연평(李延平)6)은 말하기를, “지금 같은 때에는 그저 궁벽한 곳에서 베옷을 입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평소에 하던 공부에나 힘써야 할 것이다.”7) 하였고, 양귀산(楊龜山)8)의 시에,
듬성하게 핀 꽃잎으로 경솔히 흰 눈과 싸우지 말고 莫把疎英輕鬪雪 밝은 달빛 가운데 맑은 자태를 잘 감추라 好藏淸艶月明中9)
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모두 위아지학을 하였단 말입니까.
1) 남시보(南時甫)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양명학자(陽明學者)인 남언경(南彦經 : 1528~1594)을 가리킨다. 시보는 자이고, 호는 정재(靜齋) 또는 동강(東岡)이며,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2) 위아지학(爲我之學) :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학문이란 뜻으로 묵적(墨翟)의 겸애설(兼愛說)과 상반된다. 맹자(孟子)가 “양자는 자신을 위함만 취하니 자신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는다.[楊子取爲我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양자(楊子)는 양주(楊朱)를 가리킨다. 3) 양씨(楊氏) : 양주(楊朱)를 가리킨다. 4) 《능엄경(楞嚴經)》에서 아난(阿難)이 한 말이다. 《능엄경》에는 ‘身心’이 ‘深心’으로 되어 있는데 주자가 인용하면서 ‘身心’이라 하였다. 진찰(塵刹)은 진진찰찰(塵塵刹刹)의 준말로 불교에서 온 우주의 수없이 많은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능엄경》의 주석에는 “성과(聖果)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불은(佛恩)을 갚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것으로써 보답하지 못하는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삼는다.” 하였다. 5) 두보(杜甫)의 시〈대우(大雨)〉에 나오는 구절이다. 위 《능엄경》의 구절과 함께 《주자대전(朱子大全)》 36권〈답진동보(答陳同甫)〉에 실려 있다. 6) 이연평(李延平) : 송(宋)나라 학자 이통(李侗 : 1093~1163)을 가리킨다. 연평은 호이고 자는 원중(愿中),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양시(楊時)의 제자인 나종언(羅從彦)에 수학하였고 주자(朱子)의 스승이다. 7) 《연평답문(延平答問)》에 실려 있다. 8) 양귀산(楊龜山:1053〜1135) : 북송(北宋)의 학자 양시(楊時)를 가리킨다. 그의 자는 중립(中立), 호는 귀산(龜山)이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천(伊川) 정이(程頤)의 제자로 사양좌(謝良佐), 유작(游酢), 여대림(呂大臨)과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일컬어진다. 9) 《양송명현소집(兩宋名賢小集)》 97권에서〈제궁관매기강후(諸宮觀梅寄康侯)〉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 이황(李滉),〈기명언에게 답함[答奇明彦]〉,《퇴계집(退溪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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