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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04 짐승이 사는 집

by 혜당이민지 2008. 4. 11.

   짐승이 사는 집

 

내가 금화(金化)에 살게 되면서 몇 칸짜리 집을 세내었다. 그 집에서 독서하며 지내던 중 맹자(孟子)가 진상(陳相)에게 말한 대목을 읽고서는 탄식의 말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옛사람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면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짐승에 가깝게 될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런 자라 해도 오히려 짐승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정에서 쫓겨나 떠돌면서 옷가지와 먹을거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배부르고 등 따뜻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옛 성인들의 책을 읽기도 했고, 오늘날의 군자들로부터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못하니 ‘짐승에 가깝다’는 말을 어떻게 감히 쓸 수 있겠는가?

개는 똥을 먹는다. 개가 먹는 것을 사람은 똥으로 보지만 개는 먹을거리로 본다. 그렇다고 해서 똥을 먹는 것이 개의 의로움에 어떤 손상을 입히는가? 그러나 나는 가끔 의롭지 않은데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진수성찬을 먹기도 했으므로 똥을 먹는 개보다 훨씬 못하다.

저 돼지는 음란하지만 제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원래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부끄러운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아리따운 여인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짓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모르고 저지르는 돼지보다 훨씬 못하다.

아! 먹는 것과 성욕은 많은 문제 가운데 일부를 들어본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로 넓혀 볼 때, 무엇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옛날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연유로 짐승에 가까워지는 사람조차도 성인께서는 염려하셨다. 그러니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짐승보다 못한 자를 두고서는 어떻다고 하시겠는가? 아아! 참으로 부끄럽구나! 참으로 두렵구나!

〈금수거기(禽獸居記)〉, 《시문초(詩文艸)》

해설


18세기의 학자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지은 글의 전문이다. 글의 제목인 〈금수거기(禽獸居記)〉는 ‘짐승이 사는 집에 대한 글’이라는 뜻인데, 내용을 읽어보면 저자 자신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을 두고 쓴 글이므로 짐승은 곧 저자 자신을 가리킨다. 글의 제목도 파격적이고, 자신을 짐승이라고 말한 것도 파격적이어서 평범한 옛글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저자는 1787년 정주목사(定州牧使)로 재직하던 중에 암행어사 이곤수(李崑秀)의 탄핵을 받아 면직되고 강원도 금화(金化)로 유배되었다. 의금부 조사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 글에서 자신을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을 반성하는 의미 외에도 세상에 대한 불만과 뒤틀린 심사가 스며있다.  ‘짐승에 가깝다’는 말조차 쓸 수 없다는 표현에서는 일종의 자학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글의 이면에는 정치적 맥락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주제는 지난날 자신이 해온 그릇된 행동을 거론하여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임을 밝히고 반성하는 데 있다. 의롭지 못한 음식을 먹기도 하고, 부끄러운 욕망을 탐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똥을 먹는 개보다도, 음란한 돼지보다도 못하다고 스스로의 치부를 과감하게 폭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염원하거나 다짐하지는 않았지만, 짐승보다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두렵다고 하면서 치부를 감싸지 않고 도리어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는 맹자(孟子)가 진상(陳相)에게 한 말이 논지를 전개하는 주제어로 다루어지고 있다. 다음은 《맹자》〈등문공상〉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이 옷 입으며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고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짐승에 가까울 것이다. 성인께서 또 그런 점을 걱정하셔서 설(契)에게 사도(司徒) 자리를 맡겨 사람들에게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다.(人之有道也, 飽食煖衣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짐승과 달리 인간이 고귀한 존재인 이유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바탕에서 도덕성을 지닌 행동을 한다는 데 있다. 욕구를 충족하기만 할 뿐 교육을 받지 않아 도덕성이 없는 사람은 짐승에 가깝다.

이가환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자신을 가혹하게 다그치고 있다. 기본적인 욕구도 충족되지 않은 처지였으므로 맹자가 말한 경우와 다르기는 하지만, 교육을 받았으므로 인간다운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역경에 처해서도 허물을 남에게 돌리기보다는 더욱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 집을 얻고서 ‘짐승이 사는 집’이라고 자학적 이름을 붙인 것은 좌절보다는 오기나 도전의 정신으로 읽고 싶어진다. 그런 것이 당시 선비의 인생관일 듯하다. 
                                
                                                                                                     필자 : 안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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