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3. 석고문(秦)

by 혜당이민지 2010. 2. 19.

 

3. 石鼓文(秦)


<석고문(石鼓文)>은 또한 <엽갈(獵碣)>, <기양석고(岐陽石鼓)>, <진창십갈(陳倉十碣)>이라 부른다.  이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각석(刻石) 문자이다.  관(款)과 이를 쓴 연원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새긴 연대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전국시기 진국(秦國)의 유물임을 긍정하고 있다.  모두 북과 같이 생긴 10개 돌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 돌마다 둘레에 사언(四言)시를 새겼다.  내용은 진왕(秦王)이 사냥했던 일을 기록했다.  당나라 초 천흥현(天興縣, 陝西省 鳳陽)의 삼치원(三畤原)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이 발견되자 서단이 깜짝 놀랬으며, 위응물(韋應物), 두보(杜甫), 한유(韓愈) 등이 이를 위해 시를 지어 칭송했다.  10개의 <석고문>에는 약 700여 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송나라 구양수(歐陽脩) 때에는 겨우 465자만 남았다.  현재 10개 중에 어떤 것은 이미 부식되어 완전히 문자가 없는 것도 있고, 비록 있다 하여도 대부분 심하게 손상되었다.  이 <석고문>은 현재 고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고, 송나라 탁본이 세상에 전해진다.

문자로 볼 때 <석고문>은 대전(大篆)에 속하며, 진나라의 소전과 밀접한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박하고 웅혼한 가운데 화려한 기가 스며들었다.  또한 붓을 들고 누르며 전환한 것이 원숙하고 아름다워 조금도 거친 느낌이 없다.  조용한 가운데 동적인 것을 구하며 곳곳에서 법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이 금문(金文)과 비교적 크게 구별된다.

둘째, 미친 듯 방종하며 천진하고 질박하고 실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이르러 이미 기본적으로 없어졌다.  대신 표일함이 뛰어난 아름다운 형체, 완곡하고 유동적인 자태, 온아하고 조용한 형태로 전서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열어주는 선구가 되었다.

셋째, 결체가 방정하고 고른 것이 평형과 대칭을 매우 강구했고, 필획 공간의 층차도 엄격한 규정이 있다.  자형의 대소는 기본적으로 서로 같아 참치와 기이한 자태가 없다.  사면팔방으로 평온하고 매우 근엄한 것이 일종의 표준화나 규범화된 서체의 형식을 띠고 있다.

넷째, 짜임새에 있어서 행렬이 고르고 균형을 이루며 깨끗하고 수려하다.  평정한 가운데 정취를 얻었고, 졸한 가운데 자태가 살아나 미묘한 변화가 있다.  기개는 크고 깊으며 굳세고 소박한 가운데 표일한 운치가 넉넉하다.

다섯째, <석고문>처럼 글자수가 많고, 자형이 큰 것이 금문 가운데 없다.

여섯째, <석고문>의 서체 결구는 이미 진나라 소전에 접근했고, 어떤 글자의 필획은 진나라 각석(刻石)과 매우 흡사하다.

이상에서 우리는 <석고문>을 통하여 소전 형성의 최초 형태와 운필의 형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형식상에서 진나라 각석의 선구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강유위(康有爲)는 《광예주쌍즙(廣藝舟雙楫)》에서 “<석고문>의 문자가 진나라 전서와 같지 않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왕균이 이른바 ‘그 필획이 구부러지고 재난 당한 것을 감히 버리면 문자가 주문(籒文)의 법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 것이 맞다[觀石鼓文字與秦篆不同者無幾, 王筠所謂其盤災敢棄, 知文同籒法是也].”라고 하였으며, 또한 “<석고문>은 금비녀가 땅에 떨어지고 지초가 구름처럼 모인 것 같다.  그러나 번거롭지 않고 정제되어 스스로 기이한 신채가 있다.  형체는 조금 모나고 넓적하며, 전체적으로 충서와 주문을 보면 기운과 형체가 서로 가깝다.  <석고문>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물이니 또한 서예가에게 제일의 법칙이 된다[則金鈿落地, 芝草團雲. 不煩整裁, 自有奇彩. 體稍方扁, 統觀蟲籒, 氣體相近. 石鼓則爲中國第一古物, 亦當爲書家第一法則也].”라고 했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