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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탐원/서예감상-곽노봉선생님

[스크랩] 2. 산씨반(周)

by 혜당이민지 2010. 2. 19.

 

2. 散氏盤(周)


금문(金文)은 금속기물 위에 주조하거나 새긴 문자로 금속전폐(金屬錢幣)의 문자도 이에 포함된다.  또한 종과 정이 대표적이므로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종은 대부분 악기에 속하고 정은 대부분 예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일부분의 예기는 종묘에 보존되어 국가와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중기(重器)’라고 한다.  그 내용은 주로 분봉(分封)?상사(賞賜)?조근(朝覲)?제사?정벌?공적 등이다.  그 문자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을 ‘관(款)’이라 하고 볼록하게 나온 것을 ‘지(識)’라 하기 때문에 금문을 또한 ‘종정관지(鐘鼎款識)’라고도 한다.  시대와 기구가 다름으로 인하여 금문의 형식과 문자의 많고 적음이 각기 다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초기 금문의 문자는 적으나 장식성과 도안성을 강구했으니, 예를 들면 <사모무방정명(司母戊方鼎銘)>?<낙패부을정(落貝父乙鼎)>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갈수록 문자가 많아지면서 상형도안의 문자는 점차로 소실됐다.  이외에 전폐와 병기의 문자는 일반 청동기 글자체와 또한 같지 않다.

<산씨반>은 또한 <시인반(矢人盤)>이라고도 하며 서주시대 여왕(?王) 때의 기명(器銘)이다.  청나라 건륭(乾隆, 1736-1795) 초에 섬서성 봉상(鳳翔)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대만고궁박물원에서 수장하고 있다.  375자를 19행으로 썼으며 금문의 전형적인 면목을 갖추었다.  <산씨반>?<모공정(毛公鼎)>?<괵계자백반(?季子白盤)>?<대우정(大盂鼎)>을 ‘사대국보’라 일컫는다. 

<산씨반> 시기의 금문 서풍은 대체로 규정적이고 정묘하나 이는 유독 특별한 서풍을 나타내니, 즉 상당히 거칠면서 활발하고 천진스럽다.  용필을 보면 머리와 꼬리는 둥글고 윤택하며, 중간은 포만하면서도 조금 파동을 띠고 있다.  따라서 평화롭고 온건한 가운데 동적인 느낌이 있어 매우 의미가 있다.  보기에는 기가 있고 힘이 없어 뜻을 두지 않은 것 같지만 안으로 부드러운 강인함을 품고 있어 용필에서 가장 어렵다는 일종의 내재된 역량을 나타내고 있다.  이보다 더욱 큰 특징은 결구로 자형은 넓적하고 둥글면서 체세는 기울어져 있다.  각 글자는 마치 몇 개의 조약돌을 마음대로 쌓아서 만든 형체처럼 자연스럽고 활발하며 생기가 물씬거려 공간 분할에서 고른 느낌이 없다.  예를 들면 ‘宮’자는 왼쪽이 성글고 오른쪽이 긴밀하며, ‘嗣’자는 왼쪽이 긴밀하고 오른쪽이 성글며, ‘門’자는 가운데가 성글고 밖이 긴밀하여 서로 향하는 체세를 이루고, ‘德’자는 전체가 모두 긴밀하고, ‘散’자는 오른쪽이 기울어져 내려가는 뜻을 나타내었고, ‘則’자는 왼쪽을 올려 의지하는 뜻을 나타냈다.  좌우는 대부분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아 부앙향배의 형세를 나타냈고, 상하는 정제된 글자가 하나도 없어 동적인 느낌이 강하면서 의태가 족하다.  장법을 보면 글자에 따른 결구의 특징이 때로는 성글고 때로는 조밀하여 남겨진 공간이 같은 곳이 하나도 없다.  성글고 방종한 가운데 영활하고 화목한 공력을 함유했고 고졸한 가운데 노숙한 필치를 얻었다.  흐트러진 것 같으면서 다시 합하고, 합한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흐트러져지며 혼후한 원기를 얻고 형체와 풍격이 높고 예스러우며 행동거지가 천성에서 나왔다.  이를 보면 금문에서 얻기 어려운 신품이라 하겠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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