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화로가 있는 서재” 또는 다실茶室을 뜻하는 이 편액扁額은 추사 김정희가 전서의 필획을 살려 쓴 예서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 특유의 필획과 구성의 교묘巧妙한 구사를 엿볼 수 있다. 첫째 곧은 획의 강함과 굽은 획의 부드러움을 잘 섞어 씀으로써, 전체적으로 힘찬 가운데 율동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죽竹” 자를 보면, 왼쪽 변邊은 직선으로 강하고 힘찬 획으로 쓰고, 오른쪽 방傍은 곡선으로 힘차나 부드러운 원형으로 처리하였다. 두번째 ‘로爐’ 자는 불화火 변邊을 아주 작고 좁게 위로 치받여 썼으나, 오른쪽 로盧는 불화 변을 좁게 써서 넓어진 공간에 열 줄의 수평의 획을 일정한 간격으로 첩첩히 쌓은 듯 썼다. 세번째 갈지之 자는 전서의 형태를 살려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러나 힘차게 처리하였다. 마지막 실室자 또한 전서의 형태에서 발전 시켜, 갓머리의 양 끝의 각도를 마치 처마가 내려온 듯이 씀으로써 지붕의 모양을 그려 내었다. 갓머리 밑의 지至 자는 팔각형의 넓은 창의 모양으로 씀으로써, 시원스런 방과 창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다시 잘 살펴보면 네 글자는 서로 바짝 붙어 있어 긴밀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심지어 로爐 자의 불화변과 실室 자의 갓머리의 오른쪽 획은 옆의 갈지之 자의 양 옆으로 바짝 쳐들어가 있다. 이렇게 바짝 붙어서 나오는 긴장감을 오른쪽 끝 죽竹 자가 만든 원형의 공간과 왼쪽 끝 실室 자의 창문 모양의 팔각형八角形 창문으로써 마주하게 하여 시원한 감을 주면서 이완시키고 있다. 이 양 끝의 두 글자는 가운데 노爐와 지之 작 만든 빽빽한 공간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추사체는 필획과 형태의 변화와 소밀疏密를 통하여 독특한 공간을 만들고 연출함으로써 기교의 극치를 보이는 가운데, 또한 졸拙한 맛과 멋을 풍기는 것이다. |
고독한 귀양생활에서 더 높아진 예술혼과 완성된 추사체
명작과 명품은 예술가가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운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추사 김정희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해 벼슬로 나아간 다음에도 처음에는 순탄한 관운을 타고 승승장구 하였다. 그러나 당쟁과 당파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만년에는 정치적인 삶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삶이 불운에 빠지게 된다. 제주도에서 9년, 함경도 북청에서 다시 2년의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는 고독과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
추사 김정희는 더 이상 윤택한 환경에서 학문과 예술 활동의 웅지를 펼 수 없게 되었으며, 더욱이 거주 이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지금까지 누렸던 양반 가문의 특권과 혜택 그리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박탈당하고, 바람 많이 불고 척박한 땅 제주도에서 관가의 괄시와 속박 그리고 궁핍의 시련을 겪는다. 또 가족, 지기들과 떨어진 절해고도에서 홀로 귀양살이하며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가 이렇게 실의, 좌절, 절망만이 엄습하는 극한상황에서 생존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하는 비극을 감수해야 했다. 부인의 장례를 치러줄 수 없는 비운도 받아들여햐 했다.
그러나 추사 김정희에게는 학문과 서화를 통하여 갇힌 몸과 정치적인 부자유스러움을 극복하려는 강한가 있었다. 그는 귀양을 사는 11년 동안에 더욱 학문에 매진하고 그의 서화를 심화시켰으며, 글씨와 그림을 통하여 울분을 풀고 삭였다. 자신의 소신과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자유 정신을 예술로서 극복하고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오히려 제주도에 격리된 지루한 9년간을 학문과 서예의 연구에 몰두하고 선용함으로써 마침내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만년의 추사 김정희에게 있어서 글씨는 유복하였던 선비 시절의 취미 이상이었다. 이제 글씨는 추사 김정희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그는 귀양생활을 하면서 요즘 말로 서예에 올인All-in하였다. 따라서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글씨에 모든 생각과 능력을 담고자 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빠져나올 수 없는 귀양생활 속에서 고독한 자신을 서예로써 견디고 이겨낸 것이다.
제주도에서 귀양생활을 하던 9년 동안 그의 글씨는 과거의 청고고아淸古高雅한 서풍에 기굴분방奇崛奔放한 자태姿態를 더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과거의 글씨가 단정하고 법식에 틀림없는 완벽한 전통적인 틀에 바탕을 둔 글씨였다면, 추사체는 법식과 전통을 뛰어넘어 자신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붓이 가는 데로 그리고 써낸 개성이 강한 현대적 표현주의적인 스타일의 작풍이었다.
글자의 점과 획에는 보다 더 힘이 있고 특이하였으며, 공간의 구성은 평범함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미를 보였으며, 현대적 개성이 드러났다. 새로운 필획과 구성과 개성으로써 새로운 글자, 변화된 글자, 기발하고 특이한 서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서법에 바탕을 두었으나 서법의 구속을 받고 본뜨는 과거의 작풍을 벗어나 자유롭게 썼다. 평생을 공부하여 온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하나의 법(일법一法)을 이루게 되니 신명神明이 내린 듯, 기氣가 오른 듯 신채神彩로 빛났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이런 가운데 괴기한 모양을 하기도 하고 묘한 형태를 띠면서 필획이 춤추며 달리는 황홀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묘법妙法을 깨닫고 묘필妙筆(신묘한 붓질)을 하였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비로소 남의 옛 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글씨에 몰두하였다. 그때까지 공부하였던 여러 대가들의 장점을 모아서 나름대로 해석을 한 위에 스스로 깨달은 필법을 더하여 추사체를 이루게 되었다. 글씨의 오묘한 도를 스스로 깨달아 자기만의 미학세계를 열었다.
이후 추사 김정희는 중년에 가졌던 의도적 창작욕에서 벗어나 우주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연自然’과 ‘천진天眞’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번거로운 기교를 벋어나 편하고 쉬운 가운데 더욱 커다란 기교가 나타나고, 전혀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저절로 쓰여지는 단계에 이른다. 제주도 유배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년의 글씨는 “기괴한 가운데 천진을 얻은(기중득진奇中得眞)”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추사체는 추사 김정희만의 개성적인 글씨로 일반적인 아름다움,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수 없는 글씨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런 추사체를 처음 대할 때는 괴이怪異함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바로 그 괴이함이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개성이자 높은 경지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정통적인 순수한 아름다움, 우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반대로 추醜, 즉 미적 범주範疇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추미醜美를 추구하였다. 즉 격을 깨뜨린 아름다움(파격미破格美)과 개성미로서의 괴怪를 나타낸 것이 추사체의 본질本質이자 매력인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상 위대한 서예가를 평가할 때 왕희지는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글씨의 아름다움에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를 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열심히 배운 구양순은 글씨에 규범이 되는 법식法式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또한 안진경과 소동파는 글씨를 쓰는 사람의 의취意趣를, 조맹부는 아름다운 자태姿態를 불어 넣었다고 그 공적을 말한다. 판교 정섭에 이르러 그는 다시 글씨에 개성의 괴怪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는 판교 정섭의 괴에 더하여 그가 옛사람들의 고전에서 찾아낸 새로운 정신과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다. 추사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정신으로 자신의 품성과 운명을 닮은 괴졸怪拙한 새로운 아름다움의 경지를 창조하였다. 기괴졸박奇怪拙樸, 특이한 형태를 갖춘 가운데 소박함이 가득한 새로운 서예사에 길이 남을 서체와 서풍을 펼쳐 보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 4대 명필 중에 으뜸가는 명필이 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가 되었다. 또한 동양 서예사라는 전세계의 서예계를 통틀어서도 추사가 활동하였던 19세기 전반 즉 청나라 가경嘉慶(1796~1820), 도광道光1821~1850), 함풍咸豊(1851~1861) 연간에 청나라 서예가로서 추사만한 인물은 나오지 않았으니, 추사 김정희는 당시 세계 최고의 서예가였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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