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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01 네 사람의 소원

by 혜당이민지 2008. 3. 25.

네 사람의 소원


세상에 떠도는 속된 이야기 가운데에는 그럴듯한 이치가 담긴 것이 없지 않다. 다음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옛날에 몇 사람이 상제(上帝)님에게 하소연하여 편안히 살기를 꾀한 일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저는 벼슬을 호사스럽게 하여 정승 판서의 귀한 자리를 얻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상제는 선선히 “좋다. 네게 주겠다”고 하였다.
두 번째 사람은 “부자가 되어 수만 금(金)의 재산을 소유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상제는 이번에도 “좋다. 네게도 주겠다”고 하였다.
세 번째 사람이 “빼어난 문장과 아름다운 시를 지어 한 세상을 빛내고 싶습니다”고 하자 상제는 한참 망설이다가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겠다”고 대꾸하였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그는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글은 이름 석자 쓸 줄 알고, 의식(衣食)을 갖추어 살 재산은 있습니다. 다른 소원은 없고 오로지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지키며 달리 세상에 구하는 것 없이 한 평생을 마치고 싶을 뿐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상제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답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청복(淸福)을 누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너는 함부로 그런 것을 달라고 하지 말라. 그 다음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

이 이야기는 임원에서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듯이 청복의 생활을 누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인류가 생긴 이래 현재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과연 이러한 생활을 향유한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옛날에 이른바 은자(隱者)라는 사람들은 변란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인간 세계를 멀리하여 몰래 은둔한, 타고난 은자들이 있다. 허나 나는 그들을 인정할 수 없다. 기산(箕山)에서 표주박으로 냉수 마시던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그리고 한음(漢陰)에서 오이밭에 물을 주던 노인은 신념에 따라 그렇게 산 것일까? 사실 여부를 나는 모르겠다. 적어도 마음을 즐겁게 먹고 인생을 향유한 중장통(仲長統) 정도는 되어야만 내 뜻에 거의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왕유(王維)는 망천별장(輞川別莊)에서 시를 읊조리며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 사람이나 나중에는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처했다. 반면, 예원진(倪元鎭)은 운림산장(雲林山莊)에서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이 물욕에 초탈하여 고상하게 살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액운을 면할 수 있었다. 고중영(顧仲瑛)은 옥산초당(玉山草堂)을 차지하여 살았는데 그로 인해 고상한 뜻을 품은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 세 사람은 처한 경우가 각기 다르나 마음을 맑게 가지고 고아한 뜻을 기르면서 소요하고 여유자적하는 생활을 한 점은 한결같다.

지금 <이운지(怡雲志)>에 펼쳐놓은 내용은 이 세 사람의 기풍과 대체로 같고 ‘이운지’라는 이름은 도홍경(陶弘景)*의 시에서 뜻을 취했다. 그렇다면 이 네 사람이 내가 살고 싶어 한 삶을 산 분들이다. 이들을 제외하곤 견주어 볼 사람이 더 이상 없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어렵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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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홍경은 ‘산 속에 무엇이 있느냐 물으신다면 고개 위에 흰 구름이 많다고 말하렵니다. 스스로 즐길 수는 있지만 가져다 드릴 수는 없는 거지요(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待贈君)'라는 시를 지어 산림에 은거하는 의지를 보였다.

(이운지 들머리[怡雲志引], 《임원경제지》)

해설


풍석(楓石) 서유구(徐有[矩/木], 1764~1845)가 쓴 글이다. 19세기의 명저 《임원경제지》 가운데 취미, 오락, 여행, 예술품감상, 서적을 비롯하여 선비들의 여가와 취미생활을 전문적으로 다룬 <이운지(怡雲志)>의 서문이다.

네 명의 친구가 우연히 상제님을 만나 각자의 소원을 말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제각기 평소에 갖고 있던 소망을 피력하여 허락을 받았다. 첫 번째 사람은 높은 벼슬을, 두 번째 사람은 큰 부자를 소망하였다. 부귀(富貴)를 얻고 싶다고 한 그들은 상식적이고 그럴법한 소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뛰어난 작가가 되어 명성을 드날리고자 했다.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문화적 욕구를 드러낸 소망인데 고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명예욕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뤄주기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상제가 허락한 것은 속물근성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의 소망은 모두 이루어졌다.

이제 마지막 사람이 남았다. 그런데 그의 소망이 뜻밖이다. 이름 석자 쓸 수 있고, 밥 굶지 않으며 헐벗고 지내지 않는 처지이다. 그러니 교양없이 사는 사람이 되지 않은 채 시골에 묻혀 한 평생 살고자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상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런 청복(淸福)은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니 다른 소원을 말하라며 들어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결론을 내고 있는 이 이야기는 평범하게 여유를 즐기며 사는 행복을 갈구하는 옛사람의 소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 사람의 소원이 가장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어렵고, 그런 행복은 전지전능한 신도 누리기 힘들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반추해보게 만든다. 결코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반전과 충격, 흥미를 지닌 글이 액자처럼 글에 삽입되어 있다. 서유구는 이 이야기가 세상에 떠도는 속된 이야기라고 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삼설기(三說記)》란 단편소설집에 들어 있는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의 내용과 유사하다. 저승차사의 실수로 인해 생사치부책에 기록된 수명보다 빨리 저승에 끌려간 세 선비가 염라대왕으로부터 보상조로 각자의 소원을 말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은고(素隱稿)》에는 오이무름이란 별명의 재담꾼 김중진(金仲眞)이 사람들에게 ‘세 선비 소원’이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말했다고 하며 그 사연을 기록해 놓았다. 서유구는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자신의 글 속에 끌어다가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문장을 잘하고 싶다는 소망은 서유구가 덧붙여서 변화를 더하였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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