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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22 구경하려는 욕망

by 혜당이민지 2008. 8. 19.

고전의 향기022    

구경하려는 욕망

하늘이 인간을 만들 때 욕망을 부여하였다. 그러기에 예의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의로움으로 일을 제어하지 못할 때에는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는 자가 드물다. 이것이 바로 먼 옛날 성현들이 반드시 인간적 욕망을 막고 하늘이 부여한 이치를 발휘하여 사람들이 짐승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가르치신 까닭이다.

이른바 욕망이란 것에는 종류가 많다. 그 가운데 음식이나 남녀관계는 인간의 크나큰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식욕과 정욕이 생긴다. 자신의 몸을 봉양하고 그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물이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재물욕이 생긴다. 가난하고 천한 신세가 부유하고 귀한 존재로 탈바꿈하고자 할진댄 반드시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아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과거에 급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벼슬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 이것은 모두 다 인간적 욕망으로서 없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간혹 소탈한 것을 좋아하고 담박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그 욕망을 심하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즐기려는 욕망이란 것은 다른 온갖 욕망의 우두머리이다. 구경거리라 함은 좋은 물건, 좋은 풍경 등으로, 무릇 모든 일상적인 것과 다르기에 구경할 만하고 즐길 만한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이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며, “저 물건이 좋아!”라고 말하면 울다가도 울음을 그치고 화를 내다가도 화를 푼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멋진 풍경을 만나면 그 풍경을 즐기느라 집에 갈 것도 잊고, 특이한 볼거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아무리 멀더라도 가기를 꺼리지 않는다. 나이 들어 점잖아져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봄철이 되어 꽃이 피고 버들가지가 늘어지면 놀러 나가려 하고, 가을철이 되어 단풍 들고 국화꽃 피면 구경하러 나선다. 대보름 달 뜨는 풍경, 사월초파일의 연등행렬, 큰물이 져서 강물이 불어난 모습, 여름철의 짙은 숲 그늘 등 이런저런 풍경마다 곳곳에 미친 듯 구경꾼이 몰려든다. 물고기 잡고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 좋아하고, 기예를 자랑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미소를 띤다. 길거리에서 다투거나 희롱하는 장면을 보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걸음을 멈춰야 하고, 수레와 하인들을 거창하게 몰고 가는 대갓집 행차를 보면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반드시 눈길을 주어야 한다. 특이한 물건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좇아가 보아야 하고,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반드시 뒤따라가 구경해야 한다. 눈이 달려있는 사람으로서 구경할 수 있는 것이라면, 머리를 수그린 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이렇듯 많은 볼거리에 대한 욕망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임금님이 거둥할 때이다. 이때는 서울이며 지방의 양반과 서민들이 남에게 뒤질세라 다투어 모여들어 산과 들판을 뒤덮는다. 길옆에 있는 집은 모두들 사대부 집안 부녀자들이 차지한다. 이런 때는 먼저 들어가는 자가 임자이고 뒤에 오는 자는 밀려나기 때문에 백성들 행렬을 뚫고서 가마가 달려가고, 소란스럽고 먼지 자욱한 거리를 계집종이 달려간다.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창호지 구멍으로 훔쳐본다. 그러다보니 밖으로 드러난 얼굴을 길가의 사람들이 곁눈질로 쳐다봐도 상관치 않고, 품위를 잃었다고 노비들이 손가락질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염치와 위신이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내팽개친다. 심지어는 길에서 해산하는 사람도 생기고, 다락에서 헛디뎌 떨어지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구경하는 것이라곤 펄럭이는 깃발과 무리지어 달리는 군사와 말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염집 여자들은 악소배(惡少輩)들과 뒤섞이는 바람에 해괴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태연자약하다. 마음을 쏟고 의지를 불태우기를 오로지 구경하는 데 목표를 두기에 그 나머지 수만 가지 일은 모조리 내몰라라 한다. 그래서 농사를 팽개치고 하던 일을 던져둔 채 도시락을 싸고 감발을 한 다음 남편은 마누라를 데리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이끌며, 어머니는 딸을 거느리고 길을 나선다. 그러다가 사람을 잃어버리고 돌아오는 일까지 생긴다. 이런 사건을 보고서 경계를 삼아야 하건만 양반과 서민을 가릴 것 없이 종신토록 바쁘게 구경하러 다니느라 편안히 앉아있지를 못한다. 비록 그 때문에 곤액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볼 때, 천하의 욕망 가운데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골짜기를 메우듯이 욕망을 절제해야 하건만 이 골짜기는 채울 기약이 없고, 제방을 쌓듯이 욕망을 거부해야 하건만 이 제방은 쌓을 시간이 없다. 그 실상을 살펴보면 해로움만 있을 뿐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예로부터 서시(西施)를 구경하느라 약야계(若耶溪)의 물길이 막혔다¹는 이야기도 있고, 구경꾼들이 위개(衛개)를 죽였다²는 이야기도 있다. 눈으로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욕망은 약속하지 않더라도 똑같은 모양이다. 《주역》에서 산택(山澤)의 괘³ 형상을 가지고 성인은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였거니와, 어진 사람들은 그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모자란 사람들은 팽개치는구나.

◁◀ 화성능행도 중에서 _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윤기(尹기)⁴, 〈간완욕(看玩欲)〉, 《무명자집(無名子集)》

1)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 “5월이라 서시가 연밥을 따노라니, 구경꾼들이 약야계를 메우는구나(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라는 시구가 있다. 천하절색인 서시가 약야계에서 연밥 따는 것을 구경하느라 사람들이 몰려들어 흘러가는 시냇물이 막힐 정도였다는 내용이다.
2) 개 : 玉+介. 진(晉)나라 위개는 젊은 시절에 풍채가 좋고 용모가 뛰어나서 머리를 묶고 수레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 그를 구경하러 온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때문에 위개가 피로와 질병이 심하게 나서 나이 스물일곱에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구경꾼들이 위개를 죽였다.”고 말했다. 《진서(晉書)》 〈위개전(衛개傳)〉
3) 《주역》 〈상하전(象下傳)〉에서 손괘(損卦)를 해석하여 “산 아래에 연못이 있으니 손해다. 군자는 그 형상을 취해 분함을 징계하고 욕망을 제어한다.(山下有澤, 損, 君子以懲忿窒欲.)”라고 하였다.
4) 기 : 늙은이 기(耆)의 왼쪽에 ‘심방변’이 붙어서 이루어진 글자. ‘공손하다’는 뜻.

해설


이 글은 윤기(1741~1826)가 쓴 글이다. 윤기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제자로서 남인계 학자이다. 53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후 사헌부 장령과 지평 따위의 내직과 지방의 현감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문집에는 시와 산문이 적지 않게 실려 있다. 문집에는 당시 사회와 풍속의 동향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보수적 입장에서 비판한 내용이 많아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글 또한 당시의 풍속을 고발한 글로서 세태를 비판한 윤기의 의식의 한 면을 잘 보여준다.

윤기는 이 글에서 임금의 거둥행차를 구경하려고 경향각지에서 남녀노소, 양반 천민 가릴 것 없이 몰려드는 현상을 비판하였다. 거둥에 이토록 사람이 몰려드는 이유가 새롭고 흥미를 끄는 것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구경하는 욕망이 인간의 다양한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이라고까지 하였다. 윤기가 이렇게까지 본 이유는 그만큼 당시 사회에서 다양한 구경거리가 제공되었고, 사람들이 거기에 이끌리고 즐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윤기는 이러한 구경의 욕망이 일으키는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런 점에서 보수적 관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새롭고 화려한 구경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나쁜 관점에서 볼 수만은 없다. 18세기 조선의 서울은 신기하고 거창한 구경거리가 제공되었고, 사람들은 여가를 활용하여 그러한 구경거리에 탐닉하였다. 계절에 따라 교외에서 야유회를 갖고,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공연이나 큰 행사를 찾아 구경하는 것은 당시 도시민들에게 인생을 즐기는 방편의 하나였다. 사회적 문제가 있다 하여 비난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한 구경거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임금의 거둥이었다. 정조가 수원행차할 때 백성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윤기가 비판한 내용의 실상을 보여준다. 윤기가 쓴 글에서 우리는 역으로 도시와 도시민의 역동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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