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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의 향기

018 가짜 학 소동

by 혜당이민지 2008. 8. 5.

고전의 향기018         (2008. 7. 14. 월)

가짜 학 소동

양주의 북쪽 지역은 연천과 접경을 이룬다. 여기에는 학연(鶴淵)이란 강이 흐르고, 절벽이 깎아지른 듯이 솟아 그 높이가 십여 길이다. 절벽에는 절구처럼 움푹 파인 곳이 있어서 새가 숨기에 적합하다. 세상에서는 이곳을 학소대(鶴巢臺)라고 부른다.

신유년 봄에 이름 모를 괴이한 암수 한 쌍의 새가 나타나 학소대 위에 앉았다. 몸집이 무수리만 했고, 등은 녹색에 가슴팍이 붉은 색이었다. 수컷이 둥지를 나가서 저녁 때 돌아와 암컷에게 먹이를 주었다. 암컷은 늘 둥지에 엎드려 있으면서 나오지 않다가 때때로 벼랑을 스쳐 날았다. 그런 새의 행태를 사람들은 특이하게 여겼다. 그런데 금강산의 어떤 승려가 지나가다가 새에게 예를 올리면서 “선학(仙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지한 백성들 사이에 “학에 신령이 붙었다. 몸가짐을 바로 하여 공경하면 새가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숨는다!”는 와전된 소문이 일어났다. 소문을 듣고서 사람들이 먼 곳 가까운 곳에서 마치 장터를 가듯이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서쪽으로는 개성에서, 북쪽으로는 관북 산골짜기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모여드는 사람이 꼬리를 물었다. 모두들 두 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절하면서 새가 나타나기를 빌었다. 새가 나타나면 떠들썩하게 “정말이다! 학소란 벼랑 이름과 정말 맞아떨어지는구나!”라고 하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달포를 보내고 나자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기에 지쳐버렸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마을 아이들과 상점 할머니들이 물가에 가게를 차려놓고 술과 떡을 팔기도 하고, 짚신을 팔기도 하여 이익을 챙겼다.

어느 날 아침 그 새끼들이 푸드덕푸드덕 바위틈에서 나오고, 수컷이 암컷을 곁에 데리고 모래밭으로 내려와 모가지를 숙이고 벌레와 물고기를 쪼아 잡았다.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울면서 꾹꾹 소리를 내는데 영낙없이 오리 정강이에 거위 주둥아리였다. 게다가 또 잘 날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새들이 절벽의 움푹 파인 곳에 숨어 지낸 까닭은 알을 보듬어 새끼를 낳기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제야 왁자하게 떠들고 욕하면서 돌을 집어 새에게 던졌다. 새들은 깜짝 놀라 도망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새가 실지에 맞지 않게 헛된 이름을 얻은 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경계한다고 이야기의 의미를 풀이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설마 이 새가 자기가 학이라고 여겨서 학소대 위에 앉아 명성을 노리기야 했겠습니까? 말짱 구경한 사람이 망령을 부린 것이지요. 학이 생긴 모습은 옛날의 성현이 지은 책에 흔히 나타납니다. 정수리는 붉고 모가지는 둥글며, 깃털은 하얗고 꼬리 쪽은 검으며, 다리는 길이가 석 자입니다. 우는 소리는 하늘에까지 퍼집니다. 화표주(華表柱)_1)와 구지산_2)에 학이 없다고 한다면 그만이지만, 학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런 모양으로 생겼을 것입니다. 이제 저 새를 본 사람들은 학을 몰랐고, 새는 처음부터 명예를 얻으려는 뜻이 없었습니다. 몰랐기에 위태롭지 않았고, 명예를 얻으려는 뜻이 없었기에 화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시서(詩書)를 말하고 경륜을 펼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장사치를 잘 꾸며서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같은 정승으로 만들고, 아첨꾼을 잘 주물러서 관중(管仲)과 제갈량(諸葛亮) 같은 자라고 선전하지요. 마지막에는 거섭(居攝) 시절에 왕망(王莽)이 주공(周公)의 자리에 올라앉고_3), 희녕(熙寧) 시절에 왕안석(王安石)이 공자 노릇을 한 것처럼_4), 천하와 국가에 재앙을 입히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학이 진짜가 아닌 것쯤이야 굳이 병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 신유한(申維翰), 〈서위학사(書僞鶴事)〉, 《청천집(靑泉集)》

1) 화표주 : 중국 고대에 교량과 궁전, 성벽과 능묘 등의 앞에 세워서 장식을 하는 거대한 기둥.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뒤에 그가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성문에 서있는 화표주에 앉았는데, 그 때 어떤 소년이 화살로 학을 쏘려 하자 학이 날아갔다는 사연이 도연명이 지은 《수신후기(搜神後記)》에 나온다.
2) 구지산 : 중국 하남 남쪽에 있는 산. 주(周) 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太子晉)은 곧 왕자교(王子喬)인데 피리를 잘 불었다. 뒤에는 신선이 되어 갔다가 30여년 만에 흰 학을 타고 구지산에 나타났다.
3) 거섭은 한(漢) 나라 마지막 황제 유자 영의 연호이다. 왕망은 마치 주공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위해 섭정(攝政)하고 주나라 제도를 만들었듯이 섭정을 하고 제도를 옛 제도로 바꾸다가 끝내는 한 나라 황실을 찬탈하였다.
4) 희녕은 송 신종(宋神宗)의 연호이다. 신종 때에 왕안석은 재상이 되어 신법(新法)을 만들고 《주례(周禮)》의 관제로 개혁하여 공자처럼 새 문물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설


신유한(申維翰, 1681년~1752년)이 지은 글로 문체는 서사(書事)이다. 그가 61세 되던 1741년(신유년) 연천현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지었다. 연천과 접경한 지역의 한 절벽에 나타난 학으로 인해 발생한 소동의 자초지종을 기록한 다음, 그런 소동의 이면에 도사린 인간 심리와 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분석한 글이다.

이 소동에는 학소대란 장소가 등장한다. 전국적으로 학소대란 명소가 금강산과 화양동을 비롯하여 몇 군데 있다. 바위 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면 학소대란 이름으로 불렀다. 양주 고을에도 그런 장소가 있었다.

언젠가 학소대에 평범치 않은 새가 나타났다. 흔하게 보는 모습과 행태가 아니고, 지명과도 딱 부합하기에 사람들이 쑥떡거리는 차에, 금강산에서 온 승려가 선학(仙鶴)이라고 말했다. 그 승려의 말은 일종의 선동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새에게 예를 올리고, 한번 보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 새가 새끼와 암놈을 데리고 백사장에 내려앉는 순간, 사람들은 학소대 위에 신비하게 머물던 선학(仙鶴)이 아니라 볼품없는 평범한 새임을 깨닫고 돌을 던져 새를 쫓았다.

가짜 학 때문에 발생한 이 소동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어떤 사람은 이 소동을 겪고서 헛된 명성을 얻으면 결국에는 들통 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틀린 것은 아니다. 새에다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런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반면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유한은 이 소동의 핵심은 새가 아니라 구경꾼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정말 새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신유한의 지적은 정확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유한은 보잘 것 없는 새를 선학으로 만들듯이, 정치에서도 대리인을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는 술수를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정치적 해석과 교훈도 충분히 이끌어낼 만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해석하는 올바른 시각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래도 검증도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을 대중적 심리와 선동에 휩쓸려 쉽게 신비화하거나 우상화하는 인간과 사회의 취약한 모습을 풍자하는 해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정치 현실에서 이런 우를 너무도 자주 경험해왔다. 정치뿐이 아니라, 종교와 사회생활 곳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이런 소동이 일어난다. 진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돌을 집어 새에게 던져본들' 때는 늦은 것이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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