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살펴보니, 서찰 가운데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풀었다고 자긍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감사하는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바로는,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현의 밝으신 가르침일 뿐, 아녀자를 위해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중심을 꿋꿋하게 잡고 있어서 욕망이 방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다면, 자연스럽게 어떠한 잡된 생각도 사라지리니, 규중 아녀자로부터 보답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지요?
서너 달 홀로 잠을 잔 것을 가지고 고결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덕을 베풀었다고 생색을 내는 것을 보면, 당신은 욕망이 없는 담박한 사람은 분명코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결백하여, 밖으로는 화려한 치장을 끊고 안으로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분이라면, 굳이 서찰을 보내 자신이 행한 일을 자랑한 뒤에야 남들이 그런 사실을 알아주겠습니까? 곁에는 당신을 잘 아는 벗들이 있고, 휘하에는 가족과 종들이 있어서 수많은 눈들이 지켜볼 터이니 공론이 저절로 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억지로 서찰을 보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당신은 아무래도 밖으로 드러나게 인의를 베풀고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을 급급해하는 병통을 지닌 듯합니다. 소첩이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소첩이야말로 당신에게 잊어서는 안 될 공을 세워놓았으니 이점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마세요. 여러 달 홀로 잤다고 당신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 끝에 구구절절 자랑하지마는, 예순 살이 곧 닥칠 분에게는 이렇듯이 홀로 지내는 것이 양기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이 제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당신은 귀한 직책에 있어서 도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 테니, 여러 달 홀로 지낸 정도만 가지고도 남들은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첩이 옛날 어머님 초상을 치를 때, 사방천지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고, 당신은 만 리 밖 유배지에서 하늘만 찾으며 통곡이나 했지요. 그때 저는 지극 정성으로 예법을 갖춰 장사를 치러서 남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이르기를, 분묘를 만들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친아들이라도 그보다 잘할 수는 없다고 하더이다.
삼년상을 마치고는 또 만 리 길에 올라 온갖 고생을 하며 험난한 유배지로 당신을 찾아간 일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제가 당신에게 베푼 이러한 지극한 정성 정도는 되어야 ‘잊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당신이 여러 달 홀로 잔 일과 제가 한 여러 가지 일을 서로 견주어 보세요, 어느 것이 가볍고 어느 것이 무거운지를.
이제부터 당신은 잡념을 영영 끊고 기운을 보전하여 수명을 늘리기를 바래요. 이것이 제가 밤낮으로 바라는 소망이랍니다. 그런 제 뜻을 너그러이 살펴주세요. 송씨는 아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