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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비가 연일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미루고 싶은 유혹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놓치는 낭패를 보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금세 개이기를 반복하는 아침에 집을 나섰다. 출근 시간을 막 비껴난 지하철은 서있는 자리를 확보하기도 벅찼다. 1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서야 도착한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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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1년에 5월과 10월 딱 두 번 그것도 15일씩만 전시회를 갖는다. 40년 전에 첫 전시회를 연 이후 80회째로 열리는 전시회는 ‘四君子大展’이다. 내게는 4번째 방문이었다. 먼 길 마다않고 달려가는 이유는 미술작품에 문외한이지만 보는 것만으로 절로 마음으로 흡족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전에 신문으로 소개된 글을 읽기도 했지만 때마침 입구에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기에 귀동냥을 했다. ‘매난국죽’의 순서는 계절 순이며 인기 순으로 치면 죽매난국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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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맨 뒤로 처진 까닭은 먹으로만 그리기에 국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어려워서이다.
으뜸으로 치는 대나무는 속은 겨울에도 푸르름을 지니며 곧게 서 있으니 선비의 기상을 말함이요.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비어있음은 선비의 도량을 말함이다. 어려운 시절에도 꿋꿋함을 지키는 선비의 상징성과 꼿꼿한 군자의 표상을 나타냄에는 대나무만한 것이 없다.
대나무 그림의 최고봉은 탄연 이정(1554~1626)이다. 세종대왕의 현손으로 왕족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금가루를 입혀 친 작품들이 많았고 바람에 맞선 대나무인 ‘풍죽’은 시선을 잡기에 족했다. 류덕장(1675~1756). 신위(1769~1847)도 대나무 그림의 대가였다.
매화에는 탄은 이정에 버금가는 이가 바로 어몽룡이다. 난초는 하늘하늘한 잎을 표현한다. 깊은 계곡에 혹은 산중에 홀로 피어나니 군자의 소양을 담고 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미술관이 소장한 사군자 작품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이다. 그 이전의 작품들은 임란 중에 다 소실 된 것으로 짐작된다. 사군자는 선비들의 자기수양의 방편이다. 공부하다가 쉴 대면 사군자를 치고는 했다. 선비들이 흥하면 사군자가 흥하고 선비들이 망하면 사군자가 망한다는 말까지 있다. 귀동냥을 들은 바에 의하면 사군자를 볼 때 시대별 기운을 비교해 보는 맛도 있다는데 난 잎의 개수가 적고 많음도 그 중 하나다.
문화절정기일수록 난 잎의 개수가 적다. 사군자를 볼 때 그림과 함께 꼭 글을 마음으로 읽어야 하고 낙관의 위치나 크기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글의 내용이 많을수록 시대가 어려움을 말해줌이다. 추사 김정희는 글씨 쓰는 법과 난을 치는 법이 같아 예서를 쓰는 법으로 난을 쳐야 한다고 지론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추사의 풍을 계승하였으며 묵란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그림은 현재 심사정의 ‘梅月滿庭’이었다. 매화를 비치는 은은한 달빛이 느껴지는 듯 했는데 단연 백미였다. 또한 시마정의 국화 그림인 ‘傲霜孤節’은 현존하는 국화 작품 중 최고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행인 구입한 도록을 펼쳐 들고 전시회장에서 나온 뒤에도 정원에 앉아서 또 구경했다.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망설였던 마음이 자취를 감추고 뿌듯함이 그 자릴 대신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 가을 전시회가 기대 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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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33세 때 세운 곳이다.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서화를 비롯해 자기, 불상, 불구, 전적, 외당, 전 등 많은 유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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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를 찾아가는 방법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1111번 버스나 03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성북초등하교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 기사는 <컬쳐인 시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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