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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고전명구.명시

015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by 혜당이민지 2008. 7. 3.

고전명구 015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고
人雖至愚 責人則明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어둡다
雖有聰明 恕己則昏

- 이이(李珥), 《율곡전서(栗谷全書)》 年譜 중에서

해설


조선시대 선조조 초기에 유신(儒臣) 중심의 조정 관료들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져 분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론(黨論)이 심각해지자 율곡(栗谷) 이이는 중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정책은 실패하고, 이이는 대사간을 사직하고 해주(海州)로 돌아갔습니다.

위 글은 이이가 해주에서 이발(李潑)에게 쓴 편지에 인용된 글입니다. 얼마 전 서인의 영수인 정철(鄭澈)이 서인을 지나치게 두둔한 일이 있었는데, 이이는 이발과 함께 정철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애를 다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발이 오히려 서인을 가혹하게 비난하므로 이발에게 아래의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발은 동인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심의겸(沈義謙)을 소인이라 지적하고 서인을 사당(邪黨)이라고 몰아붙이니, 심모는 그렇다치고 서인이 모두 다 나쁘겠는가. 오늘 그대가 동인을 두둔하는 것이 계함(季涵, 정철의 자)이 서인을 두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찌하여 계함을 책하던 것으로 자신을 책하지 않는가.”

위의 구절은 본래 중국 송나라 명신 범순인(范純仁)이 자제들을 경계한 말로, 《소학(小學)》 〈가언(嘉言)〉에 들어 있습니다. 이이는 《소학》을 '학문을 시작할 때 맨 먼저 배워야 할 책'으로 꼽았습니다. 위 편지를 쓴 것은 《소학집주(小學集註)》를 완성한 그 해였습니다.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분쟁이나 반목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속수무책인 채 낙향한 이이는 이 뜻을 유신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옮긴이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