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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字香 書卷氣/한시작법

[스크랩] 홍우흠 교수의 한시 특강3

by 혜당이민지 2008. 4. 9.
 

한시의 이해3

自我論 Ⅲ

1. 自我란 무엇인가?

2. 詩人의 環境

3) 時代思潮


⑶ 佛家思想


불가에서는 이 우주에 펼쳐져 있는 삼라만상 즉 무생衆生의 존재存在를 ‘공空’과 ‘색色’으로 파악하고, ‘전생轉生’의 원리에 입각해서 그 존재의 지속성을 설명했다. ‘윤회전생輪廻轉生’이란 수레바퀴가 끝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일체一切의 중생衆生들은 어떤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태어나고 죽음을 끝없이 반복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모든 사물은 다 전생에서 이승으로 왔다가 이승에서 다시 저승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전생에 좋은 일을 하다가 이승에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지만 그러한 행복을 누리다가도 남에게 악한 일을 하게 되면 저승에서는 다시 못된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음이 그러한 것이다. 한번 짐승으로 떨어지게 되면 그 업보를 씻고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것은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빠져나오듯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이와 같은 윤회전생이 원리에 의해서 중생을 바라보면 사람과 짐승과 흙과 초목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인연因緣에 의해 타고난 이승의 형상이 다를 뿐이다.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도 그러하다. 전생의 임금이 이 세상에서는 신하의 마부로 태어날 수도 있고, 이 세상의 신하가 저 세상에서는 임금이 될 수도 있으며, 저 세상에서는 남편노릇을 하다가 이 세상에서는 아내노릇을 할 수도 있게 되는가 하면 지난날의 조상이 뒷날의 후손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해서 살면 현세의 인륜도덕人倫道德이나 위계질서位階秩序 따위는 한 낱 부질없는 환상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끝없이 ‘생生․노老․병病․사死’의 과정을 거치면서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므로 현세를 ‘고해苦海’로 규정하고, 이 고해를 벗어나 생사를 초월한 열반涅槃(Nirvana)에 도달함이 그들의 최고이상最高理想이었다.

‘열반涅槃’은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원적圓寂’, ‘무위無爲’, ‘무작無作’, ‘무생無生’, ‘무탈無脫(Vimoksa)’과 같은 말이다. ‘열반’은 불어서 꺼버림의 상태(吹消狀態)란 뜻으로 ‘번뇌의 숲이 없는 상태’, ‘모든 번뇌를 궁구하여 생사계生死界를 초월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한 경지’ 혹은 ‘번뇌를 초극한 정신의 평화상태’를 이른다.

그런데 이 현세의 고해를 건너 ‘열반’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 첫걸음부터 ‘실재實存하지 아니하는 자아自我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는 원리’ 즉 ‘공空’을 인식하는 수행을 해야만 했다.

‘현세現世의 일체一切에 집착하는 것은 물의 파랑波浪과 같은 나고 죽음의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고통苦痛스러운 이승이다. 반대로 현세의 일체에 집착하지 아니하는 것은 파랑波浪이 일어나지 아니한 물과 같이 태어나고 죽음이 없는 현상이니, 이것은 바로 행복한 열반의 경지다(吳經熊, 『禪學的 黃金時代』)’

는 선종불교禪宗佛敎의 선구자 혜능慧能의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를 버리고, 임금을 버리고, 부모형제와 처자마저 버리고 오로지 출가입선出家入山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유가儒家가 불가사상佛家思想을 ‘오랑캐의 도道’, ‘이단異端의 도道’로 공격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가사상에 물든 시인들이 인생을 보고 우주를 관찰한 심경心鏡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移家雖帶郭  野徑入桑麻

近種籬邊菊  秋來未看花

門未犬吠  欲去問西家

報道山中去  歸來每日斜

옮긴 집 비록 城郭 가에 있지만,

들길 뽕밭 삼밭 지나서라네.

집과 울타리 밑에 국화를 심었으나,

가을이 와도 꽃도 피지 아니했네.

문을 두드림에 개도 짖지 아니하니,

서쪽 이웃 갔는가 물어나 보았더니.

일러 아뢰기를 산속에 갔다가,

언제라도 해질 무렵 돌아온다네.


(釋然(唐), <尋陸鴻漸不遇>)


이 시에서 들길 뽕밭 삼밭을 지나 저 멀리 성곽城郭 밑으로 집을 옮긴 것은 불자佛者가 고해인 인연의 세계를 떠남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아니함은 물론이거니와 집 가에 국화를 심었으나 돌보지도 아니하며 개나 닭 한 마리도 기르지 아니했다. 오로지 실재하지 아니하는 자아를 초월함 즉, ‘공’을 깨닫기 위해 매일 산중수행山中修行하는 은자隱者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溪聲便是廣長說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냇물소리 바로 부처님 설법이니,

산색인들 그 어찌 부처 몸 아니리요.

밤새도록 들려오는 팔만사천 게송인들,

다른 날 어떻게 이 사람을 설명하랴?

(蘇軾(宋), <贈東林總長老>)


불자佛者의 귀에는 냇물소리가 부처님의 설법(廣長說)으로 들리기도 하고, 무심한 산색山色이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採藥忽迷路  千峰秋葉裏

山僧汲水歸  林末茶煙起

약을 캐다 홀연히 길을 잃으니,

천봉우리 가을날 단풍잎 속이로다.

산에 사는 스님이 물 길러 감에,

숲 위로 아스라이 茶煙이 피어나네.

(李珥(朝鮮), <山中>)


채약자採藥者와 산승山僧은 현세의 고해를 벗어나 청정적멸淸淨寂滅의 열반涅槃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불자의 이상理想은 언제나 현세 저 너머에 있었다.


兒捕蜻蜓翁補籬  小谿春水浴鸕鶿

春山斷處歸程遠  橫擔烏藤一箇枝

아이는 잠자리 잡고 늙은이는 울타리 손질,

작은 시내 봄물에는 노자새 한가롭네.

푸른 산 저 너머 가야할 길 멀고멀어,

한 가지 등나무 지팡이만 어깨 위에 메었네.

(金時習(朝鮮), <山中卽事>)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불가사상에 심취한 사람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잠자리 잡고, 순후 소박한 늙은이가 울타리를 손질하며, 작은 시냇물에 노자새 노니는 눈앞의 아름다운 이상향에서도 그대로 안주安住할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현세의 일체를 떨쳐 버리고 한 가지 등나무 지팡이 어깨에 걸친 체 푸른 산 저 너머 가고 또 가야 할 곳(涅槃의 世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9세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詩經』․『尙書』 등 육경六經을 비롯하여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와 역사문장歷史文章에서부터 숨은 경전經典․불서佛書․도가道家의 설說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궁극적인 근원을 탐구하고 깊이 숨어 있는 뜻을 완전히 찾아내지는 못했지마는 그런대로 다 섭렵하여 가장 요긴한 내용을 간추려 문장을 써 내려감의 도구로 삼지 아니함이 없었다(李奎報, 『白雲小說』).’

와 같이 유․불․도가사상뿐만 아니라 온갖 잡가사상雜家思想까지 골고루 수용하여 융회관통融會貫通한 정신세계를 이룩한 시인도 있었다.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백李白․소식蘇軾, 한국의 이규보李奎報․이제현李齊賢․이색李穡… 등은 그러한 류類에 해당하는 문인들이었다.

어느 한 가지 사조思潮에만 편중되어 있는 개인이나 혹은 한 시대의 시는 지나치게 방만호탕放漫浩蕩하거나 섬미부화纖微浮華하거나 전아경직典雅硬直함의 폐단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성리학性理學에 경도傾度되어 있던 조선시대의 백자白瓷를 상상해 보면 지나치게 전아경직典雅硬直함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건조무미한 것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 富貴와 貧賤


① ‘富貴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자 하는 바이다.…貧賤은 사람이면 누구나 싫어하는 바이다(『論語』, 「里仁」).’


이것은 공자孔子(B.C. 552~B.C. 479)의 말이다. 부귀富貴를 얻고자하고 빈천貧賤을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뜻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의 재상 관중管仲(B.C.?~B.C. 645)도 다음과 같은 격언格言을 남긴 적이 있다.


‘倉庫가 꽉차야 禮節도 알 수 있고, 衣食이 풍족해야 榮辱을 알 수 있다.’


부귀와 빈천이 인간생활에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부귀와 빈천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 마음대로 얻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부귀한 환경에 태어나 일생을 호화롭게 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빈천 속에서 태어나 빈천으로 일생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부귀를 누리다가 빈천한 사람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고 빈천을 딛고 일어서서 부귀와 영화榮華를 쟁취한 사람도 있다. 부하다고 반드시 귀한 것도 아니고 귀하다고 반드시 부한 것도 아니다. 부한 사람 가운데서도 귀한 사람이 있으며, 빈한 사람 가운데서도 귀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귀를 향유享有하거나 쟁취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 성공한 가람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빈천에 허덕이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 실패한 사람으로 여겨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이 부귀를 획득 향유 유지하며, 빈천을 극복 탈피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겨울밤의 흰 눈빛과 여름밤의 반딧불 빛을 빌어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상투를 천장에 매달거나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정신을 가다듬던 저 가난한 과거준비科擧準備 서생書生들, 낙타 등에 금은보화를 싣고 태양太陽이 작열灼熱하는 사막을 왕래하던 아라비아의 대상들, 한 치의 혀를 무기로 삼아 육국六國을 종획縱橫하며 연형連衡, 합종合從의 술책術策을 늘어놓던 권모술수權謀術數의 변설가辨說家들, 사람을 죽여 시체의 구릉, 피의 바다를 만들어 놓고도 의기양양하던 전쟁영웅들… 이들의 꿈과 이상도 따져보면 그 어느 것이거나 다 이 부귀와 빈천에 연결連結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이 부귀와 빈천은 시인의 정情(心鏡)을 형성하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배부른 상전은 종의 굶주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러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속담이다. 타고난 심성心性은 꼭 같은 심성이나 부귀로운 상전의 배부른 심경心鏡과 빈천한 종의 굶주린 심경은 다르다. ‘밥 먹은 뒤에 금강산 구경(食後 觀金剛山)’이란 말과 같이 이미 밥을 먹고 배가 부른 상전의 심경에는 금강산의 경치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아름다움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배고픈 종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한 술 밥이 최고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전의 심경에는 아름다운 금강산 경치를 백안시白眼視한 채 오로지 밥을 보고 침을 흘리는 그 종의 모습이 ‘미천한 것’, ‘게걸스러운 것’, ‘할 수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富한 사람은 반드시 貧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貴한 사람은 반드시 賤한 사람을 거만하게 대한다(『墨子』, 「兼愛」; 富必侮貧 貴必傲賤).’


는 그러한 점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배가 고픈 종의 귀와 눈은 그러한 상전의 업신여기는 소리와 거만한 눈초리를 상관할 겨를이 없다. 우선 뼈에 사무치게 절실한 밥을 응시하고 사색하고 그리워할 뿐이다. 우리는 고려시대高麗時代 문신文臣과 무신武臣, 조선조朝鮮朝 사대부士大夫와 천민賤民들의 관계에서 그 산 예를 찾을 수 있다.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시인이라도 그 시인들이 처한 빈부귀천의 환경環境에 따라 심경과 시각이 각각 다르며 소재素材를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취향趣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富貴한 詩人의 詩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구름은 그녀의 의상이요 모란꽃은 그녀의 얼굴과 같은데,

봄바람이 헌함을 스침에 이슬 젖은 꽃은 더욱 요염하구나.

임과 함께 하심 群玉山 신선의 회견이 아니라면,

아마도 西王母의 궁궐 달빛 아래서 만남이런가!

(李白(唐), <淸平調詞>)


이 시는 이백李白이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가 침향정沈香亭에서 목단화牧丹花를 완상하는 모습을 음영吟詠한 시다.

뭉게구름과 같은 양귀비의 의상衣裳, 모란꽃과 같은 양귀비의 용모容貌, 이슬 젖은 모란꽃의 요염함, 군옥산두群玉山頭와 요대월하瑤臺月下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신선과 같은 현종과 양귀비의 어울림… 등은 부귀한 시인의 심경에 투영된 부귀로운 형상이다. 침향정․목단화 등 배경이 아무리 화려하고 현종과 양귀비가 아무리 절세의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 하더라도 이백의 심경이 빈천으로 찌들어 있다면 위와 같은 농섬부려濃纖富麗한 시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淡月疎星建章  仙風吹下御爐香

侍臣鵠立通明殿  一朶紅雲捧玉皇

밝은 달 드문 별은 建章宮을 둘렀는데,

신선 바람 불어옴에 御爐香氣 은은하네.

侍臣들이 둘러 선 通明殿 위엔,

한 송이 붉은 구름 玉皇을 받들었네.

(蘇軾(宋), <上元侍宴>)


이 시도 그러한 유에 속한다. 궁중에서 부귀한 생활을 체험해 보지 아니한 사람이면 이와 같이 웅건화미雄健華美, 청신부려淸新富麗한 세계를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⑵ 貧寒한 詩人의 詩


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梁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紙爲局  稚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惟藥物  微軀此外更何求

맑은 강 한 구비 촌락 끼고 흐르는데,

긴 여름 강마을 일마다 그윽하네.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들보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해 서로 좋은 물가의 해오라기.

늙은 아낙 종이 그려 장기판 만들고,

어린 아이 철사 굽혀 낚시 바늘 만드누나.

병든 몸에 필요한 것은 약물뿐이니, 

하찮은 몸 이밖에 무엇을 더 구하리.

(杜甫(唐), <江村>)


이 시는 가난하고 병든 두보杜甫의 심경에 비쳐진 강촌江村의 자연광경自然光景이다. 수首․함련頷聯에서는 해긴 여름 어느 강마을의 풍경이 훤칠하게 그려져 광달청신曠達淸新한 기풍을 풍기고 있으나 경련頸聯에 등장한 노처老妻와 치자稚子는 가난을 먹고 가난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윽하고 한적함 속에서 애수哀愁와 인고忍苦를 초극한 저 노처와 치자는 가난하고 병든 두보의 심경을 통해서만 관조될 수 있었던 영상들이다.


② “子貢이 말하되 ‘貧하면서도 阿諂하지 아니하고, 富하면서도 驕慢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孔子대답하되 ‘옳은 말이다. 그러나 貧하면서도 道를 즐거워하고 富하면서도 禮를 좋아함만 같지 아니하다’(『論語』, 「學而」)”


이 말은 ‘빈하면서도 도를 즐거워함(貧而樂道)’ 즉 ‘안빈락도安貧樂道’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이 말을 남긴 뒤 공자를 신봉하는 유가들은 누구나 ‘안빈낙도’란 격언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 왔으며 또 많은 사람들은 그 빈을 극복하는 고통을 시로 읊었던 것이다.

부귀한 사람의 심경과 빈천한 사람의 심경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부귀와 빈천이 시의 우열을 결정할 수는 없다. 부귀한 사람의 시는 부귀로운 흥취가 있어서 여유롭고, 빈천한 사람의 시는 빈천함의 절박함이 응고되어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문궁익공文窮益工(歐陽脩, 『梅聖兪詩集序』)’이란 말과 같이 곤궁한 시인의 시는 부귀한 시인의 시보다 절실하여 오히려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깊이 감동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한시의 이해 2】  

 

 

3. 《한시론漢詩論》의 서술방법敍述方法


1) 漢詩論의 類型


우리는 누구나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한시론漢詩論의 자료들이 전해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한시자료漢詩資料들은 편의상 격언류格言類, 시화류詩話類, 논저류論著類로 구분할 수가 있다.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격언류格言類의 시론詩論

「詩는 뜻을 말한 것」(詩, 言志)

「詩는 志(뜻)가 지향指向하는 바이다. 마음에 있을 때는 지志지만 말로 나타내면 詩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詩經》에 실려 있는 三百篇의 詩를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등은 「格言類」에 해당하는 詩論의 例들이다.

이 格言類의 詩論들 가운데는 詩의 本質을 예리하게 설파한 명언들이 많다. 그르나, 이러한 詩論들은 논의論議의 원인原因과 근거根據를 제시하지 아니한 포괄적包括的이며 직관적直觀的이며 거두절미去頭截尾한 설파이므로 그 이면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아니하다.

 

그것들은 흡사 끝없는 고행苦行과 수도修道를 통해 道를 깨달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불리佛理를 깨우쳐 주기 위해 제시했던 한 송이의 연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연꽃은 석가모니불이 체험했던 전체적인 불리佛理와 불론佛論을 암시하고 있는 꽃이었다. 이미 道를 터득한 석가모니의 입장에서 보면 불도佛道를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는 이 한 송이의 연꽃을 능가할 그 무엇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연꽃을 바라본 대부분의 불제자佛弟子들은 그것이 도대체 불리의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석가모니불만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그 오묘난측奧妙難測한 불도佛道를 일시에 깨닫는 데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詩, 言志」 등을 통해서 詩의 전체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불리를 깨닫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詩를 가르치면서도 詩를 몽롱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는 詩論이다.


⑵ 시화류詩話類의 시론詩論

「詩話」란 詩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필식으로 쓴 詩論이다.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의《六一詩話》는 詩話의 효시다. 작가作家 ․ 주제主題 ․ 풍격風格 ․ 작법作法 ․ 일화逸話 ․ 격률聲律…… 등등 詩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면 그 무엇이라도 시화詩話의 대상이 된다.


「대개 시詩를 지음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법이니 책과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며, 詩에는 특별한 정취情趣가 있는 법이니 理와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아니하고 理를 궁구하지 아니하면 그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다. 이른바 理의 길을 거치지 아니하고 설법說法에 빠지지 아니한 詩가 上品의 詩다. 詩란 정성情性을 음영吟詠한 것으로서 성당시대盛唐時代 詩人들은 오로지 흥취興趣를 노래함에 있었으니 영양羚羊(염소와 비슷한 큰 뿔이 난 산양)이 나무에 뿔을 걸어 잠을 잘 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 오묘함은 투철영롱透徹玲瓏하여 무엇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중의 소리와 같기도 하고, 형상 속의 색채와도 같고, 물속의 달과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도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끝나지 아니하는 것이다.」(엄우嚴羽, 《창랑시화滄浪詩話》)


이것은 詩의 情趣를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이며,


「조관지晁貫之란 사람이 杜與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겨 놓고 돌아왔다.


草堂不見浣溪老,               草堂을 찾았으나 浣溪 늙은이 만나지 못해,

折得靑松渡水歸.               푸른 솔가지 꺾어 물을 건너 돌아왔네.」


라는 <草堂>詩가 지어진 유래와 그 詩를 간단히 적어둔 습유록拾遺錄이다.

이와 같이 詩話는 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거나 다 言及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詩論 전체에 대한 구조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도 그 이야기들이 놓여질 자리를 매겨 주지 못하고 있음이 흠이다. 흡사 끈 떨어진 구슬이나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과도 같이 혼잡하고 산만한 詩論들이다. 詩論을 얽을 수 있는 재료이긴 하나 아직 구체적인 체계를 갖춘 詩論은 아니다.


⑶ 논저류論著類의 시론詩論

격언류 시론과 시화류 시론에 이어서 나온 것이 논저류 시론이다. 논저류의 시론은 近來의 詩論家들이 통일된 체계와 일관된 논리에 입각하여 쓴 시론이다.

《漢語詩律學》(王力), 《詩詞曲格律論》(吳丈蜀), 《塡詞名解》(毛先舒), 《中國詩的神韻格調及性靈說》(郭紹虞), 《詩言志辨》(朱自淸), 《支那詩論史》(令木虎雄), 《中國韻文通論》(傅隸樸) 등은 그러한 例에 속한다.


2) 한시론漢詩論의 대상對象


漢詩論은 광의적廣義的인 漢詩論과 협의적狹義的인 漢詩論으로 구분될 수 있다. 광의적인 한시론은 漢詩에 문제이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지 論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한시의 유형類形, 한시의 역사歷史, 한시의 감상鑑賞 등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적인 한시론은 주로 한시의 생성원리生成原理를 論議하는 詩論이다. 그러므로 그 논의의 대상은 몇 가지 갈래로 한정되어질 수가 있다.


「詩란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엇갈림(交錯)에서 이루어진 心像(覺悟)을 詠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위의 第二節 鍾嶸, 朱熹 詩論 참조)

은 협의적인 詩論이 무엇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의 단서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自我(詩人)에 대한 문제; 둘째, 對象(事物)에 대한 문제; 셋째, 自我와 對象의 엇갈림(交感)에 대한 문제; 넷째, 心像(志)에 대한 문제; 다섯째, 形象化(表現)에 대한 문제는 俠義의 漢詩論이 추구할 다섯 가지 논의論議의 대상이다.

 

 

 

 

        한시란 무엇인가


                         洪瑀欽(嶺南大學校敎授)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연말 나는 《月刊書藝文化》의 편집주간인 정태수씨를 만나 書藝와 漢詩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정씨는 나에게 서예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한시론을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시를 강의하기 위해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졸저《漢詩論》의 요지를 간추려 그 청탁에 응하기로 하였다. 모쪼록 서예인들의 작품창작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한시론에 대해 연재를 시작하니 독자제현께서는 참고해 주기 바란다.


Ⅰ.詩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강구되어 왔고 또 수많은 대답을 시도해 왔다. 그 대답들 가운데서 시의 實狀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적절하게 간파했다고 여겨지는 몇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詩論의 源泉이 된 舜의 정의

舜은 중국 전설시대의 황제인 黃帝․ 顓頊․ 帝嚳․ 요임금[堯帝]를 계승하여 帝位에 올랐던 임금이었다1). 그는 세계문학역사상 최초로 시에 대한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그는 「詩는 志를 말한 것이다.」2)라고 하였다. 이 말은 漢文學史上 가장 오래된 論詩 格言이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詩의 실상을 통찰한 내용으로 만고불변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詩를 論한 문인치고 이 격언을 인용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舜의 정의를 보충한 종영(鍾嶸)의 견해

漢文學史上 詩의 品格에 관해 처음으로 論究했던 사람은 위진남북조시대 梁나라의 종영이었다. 그는 漢代以來의 詩를 上 ․ 中 ․ 下 三等級으로 분류하여《詩品》이란 詩評書를 남겼다. 그는 《詩品》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詩의 生成原理에 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氣가 事物을 움직이고 사물이 사람을 感動시키기 때문에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어 춤과 읊조림으로 형상화된다.」3)


여기서 「氣가 事物을 움직인다.」는 것은 시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만물, 즉 對象에 관한 문제이며, 「事物이 사람을 感動시킨다」는 것은 對象과 시인의 交感을 뜻함이며,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는다.」는 것은 대상과 자아가 교감함으로써 心像(志)이 이루어짐을 뜻함이며, 「춤과 읊조림으로 形象化한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이루어진 心像(志)을 동작이나 언어로 표현함을 이름이다. 위의 내용을 다시 연결시키면 「詩란 對象과 시인의 交感에서 얻어진 性情(志)을 言語로 표현한 것」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영(鍾嶸)의 이 견해는 詩의 개념을 완전무결하게 정의한 名言으로써 위로는 舜의 詩論을 보완한 동시에 아래로는 唐 ․ 宋 ․ 明 ․ 淸代를 거치면서 구체화된「情景交融論」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3) 性理學자 주희(朱熹)의 정의

朱熹(1130-1200)는 南宋의 학자로서 性理學을 集大成한 동시에 문학에 대해서도 투철명 료(透徹明瞭)한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詩經》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詩集傳》을 편술하면서 지난날 전해오던 《毛詩》의 序文을 後人의 위작(僞作)으로 단정하고 새로 《詩集傳》의 序文을 쓸 정도의 詩論家였다. 그는 그 서문에서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 「詩란 무엇인가?」 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고요함[靜]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性인데 그 性이 物에 감동되는 것은 性에서 일어난 欲[情] 때문이다. 대개 性에서 欲[情]이 일어나게 되면 생각[思]이 없을 수 없고, 말[言]이 있은 뒤에 말[言]으로 다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한숨과 탄식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자연스러운 음향(音響)과 절주(節奏)가 생겨나 능히 억제할 수 없음이 있게 된다. 이것이 詩가 지어지는 까닭이다.」1)


는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詩何爲而作也)에 대한 自答이며, 「詩는 詩人이 마음으로 事物을 感覺하여 언어로 形象化한 것」2)은 「詩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이 두 가지 해답은 과정과 결과의 관계에 놓여지는 내용으로서 後者는 前者를 요약해 놓은데 불과한 것이다. 이 주희(朱熹)의 시에 대한 개념(槪念) 정의(定義)는 앞에서 소개한  종영(鍾嶸)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이상 우리는 舜 ․ 鍾嶸 ․ 朱熹 세 사람이 시의 개념에 대하여 정의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舜은 詩人의 「志」(心像)에 중심을 둔 불완전한 정의를 내렸던 것이며, 종영과 주희는  詩의 五大生成要件을 기본으로 한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어울림(交感)에서 이루어진 心像(志)을 言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이란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鍾 ․ 朱 兩氏가 내린 시의 개념 정의를 完整한 것으로 믿고 그 내용의 줄거리와 갈래를 따라 이 글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겠다.


2.「漢詩」란 무엇인가?

 

한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는 동시에 한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1) 「漢詩」는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하는 말이다.

「漢」은 西紀前 206年에 건국되어 西紀後 219年에 멸망한 中國歷史上에 존재했던 한 王朝의 명칭이다. 漢 以前에는 堯帝가 다스린 唐, 舜이 다스린 虞를 비롯하여 夏․ 殷․ 周․ 秦이 있었으며, 漢 以後에는 魏晉南北朝 ․ 隋 ․ 唐 ․ 宋 ․ 元 ․ 明 ․ 淸 ․ 中華民國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 漢은 前代文化를 계승, 정비, 발전시킴으로 말미암아 중국문화의 기반을 완성시킨 왕조였으며, 漢 以後의 歷代王朝들은 漢이 이룩해 둔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학술, 예술 등 모든 제도를 운영해 왔다. 따라서 뒷날 사람들은 중국 역대의 문화를 총칭하여 「漢文化」라 일컫게 되었다.

「漢文學」이니 「漢詩」니 하는 말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시는 漢代 만의 詩가 아니라 한대 이전의 시와 이후의 시를 포함한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함이다.

周代의 《詩經》과 《楚辭》, 漢代의 樂府詩 ․ 賦 ․ 五言古詩 ․ 七言古詩, 唐代의 五七言 近體詩, 宋代의 詞, 元代의 散曲 等을 「漢詩」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흔희 五七言 古詩나 近體詩만을 한시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2) 「漢詩」는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어 표현한 詩다.

비록 中國에서 中國人이 쓴 詩라 하더라도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응용하여 쓴 詩가 아니면 「漢詩」라 할 수 없다. 元代의 蒙古語文으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 淸代의 滿洲語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가 있다면 그러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를 빌어서 표현한 詩라 하더라도 漢語文法에 맞는 漢語와 漢詩形式을 갖추어 쓰지 아니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新羅의 鄕歌나 高麗의 景幾體歌 등이 한시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함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려 쓴 詩는 비록 中國人이 쓴 詩가 아니라도 「漢詩」일 수가 있다.


山僧貪月色,           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           샘에 비친 달빛을 병 속에 퍼 담았네.

到寺方應覺,           절에 와서 바야흐로 깨닫고 보니,

甁空月亦空.           병도 비고 달 또한 간 데 없다네.


예컨대 위의 시는 高麗文人 白雲 李奎報(1168〜1241)의 詩 <詠井中月>이며,


呼童烹茗一甌濃,       아이 불러 차 끓이니 한 항아리 짙은 향기,

睡起園林午後風.       잠깨어 일어남에 정원 숲엔 오후 바람.

知是落花前夜雨,       알겠다. 떨어진 꽃 지난 밤 비로 인해,

小溝添水沒鳧翁.       작은 시냇물 불음에 오리들 떠다니네.

      

이 시는 日本 鎌倉室時代의 僧侶文人 雪村友梅(1281〜1346)의 詩 <和友人翁字>다. 이들은 비록 漢人(中國人)이 아니라도 漢字 ․ 漢語 ․ 漢詩形式을 借用하여 이와 같이 훌륭한 漢詩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漢詩」란 단순히 「漢代의 詩」, 「漢人의 詩」, 「漢字로 表現한 詩」가 아니라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사용하여 지은 詩」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漢人(中國人)이 아닌 어떤 외국인도 한시를 지을 수 있고, 漢詩人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漢詩에 담겨 있는 사상이나 감정이 中國的인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3. 《漢詩論》의 敍述方法


1) 漢詩論의 類型

우리는 누구나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漢詩論의 자료들이 전해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漢詩資料들은 편의상 格言類, 詩話類, 論著類로 구분할 수가 있다.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格言類의 詩論

「詩는 뜻을 말한 것」(詩, 言志)1)

「詩는 志(뜻)가 指向하는 바이다. 마음에 있을 때는 志지만 말로 나타내면 詩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2)

「《詩經》에 실려 있는 三百篇의 詩를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3)

등은 「格言類」에 해당하는 詩論의 例들이다.

이 格言類의 詩論들 가운데는 詩의 本質을 예리하게 설파한 명언들이 많다. 그르나, 이러한 詩論들은 論議의 原因과 根據를 제시하지 아니한 包括的이며 直觀的이며 거두절미(去頭截尾)한 설파이므로 그 이면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아니하다.

그것들은 흡사 끝없는 苦行과 修道를 통해 道를 깨달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佛理를 깨우쳐 주기 위해 제시했던 한 송이의 연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연꽃은 석가모니불이 체험했던 전체적인 佛理와 佛論을 암시하고 있는 꽃이었다. 이미 道를 터득한 석가모니의 입장에서 보면 佛道를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는 이 한 송이의 연꽃을 능가할 그 무엇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연꽃을 바라본 대부분의 佛弟子들은 그것이 도대체 불리의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석가모니불만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그 오묘난측(奧妙難測)한 佛道를 일시에 깨닫는 데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詩, 言志」 등을 통해서 詩의 전체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불리를 깨닫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詩를 가르치면서도 詩를 몽롱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는 詩論이다.


⑵ 詩話類의 詩論

「詩話」란 詩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필식으로 쓴 詩論이다. 宋代 歐陽修의《六一詩

話》는 詩話의 효시다. 作家 ․ 主題 ․ 風格 ․ 作法 ․ 逸話 ․ 聲律…… 등등 詩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면 그 무엇이라도 詩話의 대상이 된다.


「대개 詩를 지음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법이니 책과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며, 詩에는 특별한 情趣가 있는 법이니 理와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아니하고 理를 궁구하지 아니하면 그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다. 이른바 理의 길을 거치지 아니하고 說法에 빠지지 아니한 詩가 上品의 詩다. 詩란 情性을 吟詠한 것으로서 盛唐時代 詩人들은 오로지 興趣를 노래함에 있었으니 羚羊이 나무에 뿔을 걸어 잠을 잘 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 오묘함은 透徹玲瓏하여 무엇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중의 소리와 같기도 하고, 형상 속의 색채와도 같고, 물속의 달과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도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끝나지 아니하는 것이다.」1)


이것은 詩의 情趣를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이며,


「晁貫之란 사람이 杜與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겨 놓고 돌아왔다.


草堂不見浣溪老,               草堂을 찾았으나 浣溪 늙은이 만나지 못해,

折得靑松渡水歸.               푸른 솔가지 꺾어 물을 건너 돌아왔네.」


라는 <草堂>詩가 지어진 유래와 그 詩를 간단히 적어둔 拾遺錄이다.

이와 같이 詩話는 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거나 다 言及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詩論 전체에 대한 구조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도 그 이야기들이 놓여질 자리를 매겨 주지 못하고 있음이 흠이다. 흡사 끈 떨어진 구슬이나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과도 같이 혼잡하고 산만한 詩論들이다. 詩論을 얽을 수 있는 재료이긴 하나 아직 구체적인 체계를 갖춘 詩論은 아니다.


⑶ 論著類의 詩論

格言類 詩論과 詩話類 詩論에 이어서 나온 것이 論著類詩論이다. 논저류의 시론은 근래의 詩論家들이 통일된 체계와 일관된 논리에 입각하여 쓴 시론이다.

《漢語詩律學》2), 《詩詞曲格律論》3), 《塡詞名解》4), 《中國詩的神韻格調及性靈說》5), 《詩言志辨》6), 《支那詩論史》7), 《中國韻文通論》8) 등은 그러한 例에 속한다.

2) 漢詩論의 對象

漢詩論은 廣義的인 漢詩論과 狹義的인 漢詩論으로 구분될 수 있다. 광의적인 한시론은 한시에 관한 문제이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한시의 類形, 漢詩의 歷史, 漢詩의 鑑賞 등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적인 한시론은 주로 한시의 生成原理를 논의하는 시론이다. 그러므로 그 논의의 대상은 몇 가지 갈래로 한정되어질 수가 있다.


「詩란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엇갈림(交錯)에서 이루어진 心像(覺悟)을 詠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1)


은 협의적인 詩論이 무엇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의 단서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自我(詩人)에 대한 문제; 둘째, 對象(事物)에 대한 문제; 셋째, 自我와 對象의 엇갈림(交感)에 대한 문제; 넷째, 心像(志)에 대한 문제; 다섯째, 形象化(表現)에 대한 문제는 협의의 한시론이 추구할 다섯 가지 논의의 대상이다.






 홍우흠 교수는 대만의 중국문화대학에서 중국문학(소식문학 전공)을 연구하였고 중화민국 국가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문학과 한시에 관한 여러 권의 논저를 낸 바 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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