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머리털이 있는 것처럼 말에게는 갈기털이 있다. 세상에서 하는 말에 남에게 말을 맡길 때 “하루 먹을 콩은 주지 않아도 좋으나, 하루에 빗겨야 할 빗질은 잘 해다오”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이것은 말에게 말갈기를 빗질하는 것보다 절실한 바램이 없음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가 돗자리를 짠 것처럼 봉두난발에다, 때가 소똥 같이 덕지덕지 끼어 있으며, 머리털에 서캐 알이 엉겨 붙어서 실로 꿰맨 것처럼 뽀얗게 보인다고 하자. 낮에는 망건으로 머리를 감싸서 요행히 남들이 보지 못하지만, 밤이 되면 밤새도록 긁어대기 때문에 귀밑머리와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질해서 다듬을 줄을 모르니 사람이 돼서 말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여기에 말 두 마리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갈기를 빗질해 주기에 털이 번들번들하여 빛이 나서 보기에도 멋지다. 다른 하나는 주인이 사랑하지 않고 그저 물건을 싣거나 타고 다니며, 꼴이나 베어다 준다. 어쩌다 마당에 끌어다 놓으면 말은 바로 땅바닥에 뒹굴면서 제 스스로 긁는다. 그러다 보니 진흙과 먼지는 머리와 등짝을 뒤덮고, 궁둥이는 돼지 궁둥이 꼴로 변해 더 이상 말다운 꼴이 없다. 만약 말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가려움증을 하소연하면서 빗질은 하지 않고 그저 콩과 꼴만 던져주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전에 나는 다지동(多枝洞)_1)에서 기남(己男)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두발 상태는 저런 꼴을 하고 있었지만 벙거지를 쓰고서 고을의 서원(書員)_2)이 되어 돌아다녔다. 내가 그에게 “당신은 평상시 한 달에 몇 번이나 빗질을 하는가?” 물었더니 그는 “저는 빗질을 성실하게 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 번씩 빠짐없이 빗어서 그냥 지나간 해가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선 상당히 우쭐하는 태도가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비웃고 말았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어둡고 어리석어 콩인지 보리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므로, 사람 사는 이치를 가지고서 꾸짖을 상대가 아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저 사람 수를 따지는데 숫자나 채울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 날이 저물기도 전에 먼저 잠들고 아침 해가 높이 뜬 이후에야 비로소 일어나서, 불쑥 밥 내오라 재촉하여 먹고 의관을 입고서 집밖으로 나온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적에 했던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서 그런 행동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