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보지 못하였는가? 잘 사는 사람은 달팽이 껍질 같은 초가집이라도 시서(詩書)를 읊조릴 수 있고, 말 한 필 겨우 돌릴 만한 마당을 가진 집이라도 자손에게 물려줄 만하네.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기둥을 화려하게 칠하고 기와에 꽃무늬를 새긴 집에 살더라도 촛불을 켜놓고 책 한 번 보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네.
비록 내 책이 적다고는 하지만, 요순우탕(堯舜禹湯)과 문무주공(文武周孔)의 도가 실려 있고, 반고(班固)와 범엽(范曄)이 역사가로서 내린 판단이 드러나 있으며, 대지가 만물을 받치고 바다가 모든 강물을 포용하는 듯한 주자의 학문이 실려 있고, 진나라 한나라 이래 수백 수천년 동안 활동한 작가의 모범적인 작품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네. 내가 좌우에 그 책을 꽂아놓고서 종신토록 그 안에서 머물러도 충분할 것일세. 군자가 책을 꼭 많이 구비해야만 하는가? 많지 않아도 되네.
더욱이 내 형님에게는 수천 권의 책이 있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발(題跋)이 쓰여 있고, 아버지의 장서인이 찍혀 있네. 또 우리 아우 송택거사(松宅居士)는 일찍부터 도서를 수집하는 벽(癖)이 있어서 소장한 책이 또 수천 권을 상회하는데 그 책들을 만송루(萬松樓) 안에 보관하고 있네. 내가 내 집에 머물 때는 내 책을 읽으면 그만이고, 집밖을 나가게 되면 형님과 아우의 장서는 곧 내 책이요, 형님과 아우의 집은 내 서소(書巢)라네. 내 서소는 곧 소강절(邵康節)의 열두 곳에 만든 집_1)과 비슷하네. 그러니 육유 선생에게 비유하는 정도에 그치겠는가?
그렇지만 둥지[巢]란 것은 상고 시절의 집으로서 둥지가 변하여 사람이 사는 주택이 만들어졌고, 주택이 만들어지면서 음란한 기예가 흥성하게 되었네. 올바른 도를 실천하지 않고 올바른 학문을 밝게 추구하지 않게 된 것은 온갖 학술과 수많은 조류를 담은 엄청나게 많은 저 서적들이 그 도와 학문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네. 내가 ‘서소’로 이름을 지은 것은 저 소박한 옛날로 돌아가려는 뜻이 있는 것이네. 그러니 또 어찌 책을 많이 모으는 데 힘쓰겠는가?” |